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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건물 지어준 서울시, 무료급식소 ‘밥퍼’ 고발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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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무료 급식을 이어온 사회봉사단체인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65) 목사가 경찰에 고발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는 밥퍼나눔운동(이하 밥퍼) 본부가 시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했다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13년 전 밥퍼의 가건물을 지어줬던 서울시와 밥퍼의 인연은 왜 악연으로 치닫고 있을까.

17일 오전 증축 공사를 중단한 모습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 서울시는 밥퍼가 불법증축을 했다며 지난해 12월 10일 경찰에 고발했다. 함민정 기자

17일 오전 증축 공사를 중단한 모습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 서울시는 밥퍼가 불법증축을 했다며 지난해 12월 10일 경찰에 고발했다. 함민정 기자

서울시, 13년 전 건물 지어준 밥퍼 ‘불법증축’ 고발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최 목사를 서울동대문경찰서에 고발한 혐의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과 건축법 위반이다. 1988년부터 청량리 일대에서 무료급식 사업을 해온 밥퍼가 현재 있는 곳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553번지로, 서울시의 땅이다. 지난해 6월부터 밥퍼가 고독사 예방 사업을 위한 사무실 등을 마련하고자 기존에 있던 가건물 양옆으로 3층 규모의 증축 공사를 시작하면서 불법증축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해 동대문구는 밥퍼에 두 차례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서울시의 토지사용 허가를 받고 동대문구로부터 건축물 허가 절차를 받아야 했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밥퍼에 대한 고발 취하는 없다. 토지 사용 허가 행정 절차를 이행해야 취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축은 행정 절차 필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밥퍼를 고발한 서울시는 13년 전에는 밥퍼에 임시 가건물을 지어줬다. 2009년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하수관로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 되자, 기존에 있던 밥퍼 건물을 철거하고 맞은편에 지금의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건물을 짓는 주체가 서울시라서 허가가 필요 없었지만, 이번엔 밥퍼가 증축을 하며 행정 절차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18일 동대문구에 따르면 밥퍼는 1989년 임시 건축 허가를 받고 시설물을 설치했다. 2009년에는 기존에 설치된 건물을 철거하고 이듬해 현재 위치에 가건물을 세웠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밥퍼는 현재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라며 “2009년 서울시가 밥퍼의 건물을 건축한 이후 허가를 받지 않아 무허가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신고 절차를 이행하던 중 구청에서 가설 건축물로서 용도가 부적합하다고 해 신고 처리가 안 됐다”고 했다. 구와 시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사이 밥퍼는 무허가로 무료급식을 진행해 온 셈이다.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굴다리 지하차도에서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함민정 기자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굴다리 지하차도에서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함민정 기자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굴다리 지하차도에서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함민정 기자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굴다리 지하차도에서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함민정 기자

“구와 시의 행정미스”…“행정절차 취약 부분 있었다”

최 목사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11년 넘게 사용하던 건물이고 건축 허가권자인 동대문구청장이 공사를 진행하라고 했는데 서울시에서 불법 건축이라며 고발한 것에 대해 분노한다”며 “서울시와 동대문구 사이의 행정 미스이며, 순수 민간단체가 위법시설, 범법자인 것처럼 몰아간 것은 분명히 저들의 책임이고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증축 공사와 관련해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땅 주인인 서울시가 허가를 안 해주는데 우리가 어떻게 건축 허가를 내주겠나. 두 차례 공사 중지를 명령한 이유도 서울시와 토지사용을 협의하라는 뜻이었다”고 반박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1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011년 8월경 ‘무료급식소 밥퍼의 건축물 사용허가서 제출 요망’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밥퍼에 보냈지만, 허가를 받지 않고 운영해왔다”며 “무료급식의 필요성 등으로 제재가 쉽지 않았고, 행정기관도 행정 절차가 취약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밥퍼 반대 민원도…“기부채납 검토 중”

서울시의 고발 배경에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청량리 일대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와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 중 일부가 밥퍼에 대한 항의를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했다고 한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어디서 오시는지도 모르는 노숙자와 어르신들이 학생들의 통학로 주변에 있는 점에 대한 민원이 있었다. 주민들은 ‘더 이상의 희생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와 밥퍼는 증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밥퍼가 시설을 기부채납하면 공유재산심의위원회 등의 절차를 거쳐 시유지 사용 허가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밥퍼 측도 이에 필요한 문서를 구비해 원만히 해결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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