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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걸음이 부족했다” 신진서 최고봉 등정 언제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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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신진서가 지난 5일 한국기원이 발표한 한국 바둑랭킹에서 1만310점을 획득, 25개월 연속 1위를 지켰다. 사진은 바둑 랭킹 1위 한 신진서 9단. [사진 한국기원]

신진서가 지난 5일 한국기원이 발표한 한국 바둑랭킹에서 1만310점을 획득, 25개월 연속 1위를 지켰다. 사진은 바둑 랭킹 1위 한 신진서 9단. [사진 한국기원]

마라톤이나 히말라야 등반에서 마지막 한걸음은 근사하고 감동적이다. 그렇다면 세계최강을 향한 바둑기사 신진서 9단의 마지막 한걸음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신진서 9단은 지난해에도 승률 1위, 다승 1위에 상금도 가장 많이 벌었다. 국내 5관왕을 차지했고 세계대회서도 21승 3패의 높은 승률을 보여줬다. 국내 기사에게 3패를 당했을 뿐 외국 기사에겐 18전 전승이다. 1년여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중국의 일인자 커제에게 납득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한 뒤 몹시 분했던 신진서는 “세계대회서 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적어도 외국 기사에게는 그 약속을 지켰다.

국내 랭킹 1위 자리는 25개월째 지키고 있고 비공식이지만 유럽 웹사이트 고레이팅(Go Rating)에서도 신진서는 세계 1위다. 또 랭킹 10위 내의 경쟁자들 중에서 가장 젊고(22세) 바둑 나이로 볼 때도 이제 막 전성기에 들어섰다는 점도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신진서는 아직 세계 최강자는 아니다.

신진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지난해는 완벽한 한 해가 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걸음이 부족했다.” 지난 11월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박정환 9단에게 당한 패배를 두고 하는 얘기다.

2021년 상금 순위

2021년 상금 순위

신진서는 올해 두 개의 세계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하나는 중국 양딩신 9단과의 LG배 결승전(2월7일). 다른 하나는 중국의 신흥강자 셰커 9단과의 응씨배 결승전(일정 미정). 한·중 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이 신진서와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신진서는 그러나 올해의 승부처를 ‘아시안게임’으로 지목한다.

제19회 아시안게임은 9월10~2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며 바둑이 부활하여 남자 개인, 남녀 단체 등 3개 종목이 치러진다. 신진서는 “아시안게임이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성패가 갈릴 것이다”고 말한다. 바둑대결은 결국 한·중 대결이며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최대 승부처는 아시안게임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동안 세계바둑을 휩쓸었던 중국에서 신진서를 “최대의 위협”으로 지목한 것은 벌써 2년쯤 된다. 일본의 대삼관(기성·명인·본인방)인 이야마 유타 9단은 지난 연말 농심신라면배에서 한·중의 강자 4명을 연파한 뒤 “세계최강은 신진서”라고 말했다. 고수들끼리의 체감에서 신진서는 이미 가장 두려운 적수다.

그러나 신진서는 삼성화재배에서의 패배가 보여주듯 논리로는 설명이 힘든 빈 공간을 갖고 있다. 박정환과의 3번기 첫판을 먼저 이겼음에도 그는 어느 순간 승부를 서두르며 폭주했고 본인의 무수한 장점을 발휘할 기회도 없이 무너졌다. 그 대목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기성 우칭위안(吳淸源)의 말을 빌리면 바둑은 조화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실리와 세력의 조화. 신진서 바둑은 추종을 불허하는 깊은 수읽기와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다. 직선적이고 뜨겁다. 여기에 곡선과 부드러움을 보태는 게 좋을까. 아니다. 그건 최소한 정답은 아니다.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면 신진서는 잠시 접어두었던 ‘마지막 한걸음’을 조용히 내딛고 이창호 이후 존재하지 않았던,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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