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도 농구도 허·허·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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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허재(가운데) 전 감독과 허웅(오른쪽), 허훈 부자. 박린 기자

허재(가운데) 전 감독과 허웅(오른쪽), 허훈 부자. 박린 기자

요즘 허재(57) 전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 만큼 잘 나가는 이가 또 있을까. 프로농구에서 활약 중인 두 아들 허웅(29·원주 DB)과 허훈(27·수원 KT)도 인기가 상한가다. 16일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허재-허웅-허훈 삼부자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허씨 삼부자’는 “요즘 각자 너무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들 정도”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잘나가는 허재·허웅·허훈 인터뷰 #웅 "아버지는 농구대통령 불렸지만 #저희는 보좌관 정도…한참 멀었죠" #훈 "엄마가 경기장 오면 이기는데 #아버지만 오면 우리팀 죽을 쒀요" #허재 "나도 너희 경기 보면 10년 늙어"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던 허재는 이제 ‘예능 대통령’으로 불린다. ‘허씨 형제’ 허웅과 허훈은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역대 최다 득표 1, 2위를 차지했다. ‘별들의 잔치’ 올스타전은 입장권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매진 됐는데 허웅과 허훈이 각 팀의 주장을 맡았다. 이날은 허재가 특별 심판으로 깜짝 등장해 ‘팁오프’를 했다. 허재는 “허씨 가문의 경사이자 영광”이라며 “허허” 웃었다.

허재(가운데) 전 감독과 허웅(오른쪽), 허훈 부자. 박린 기자

허재(가운데) 전 감독과 허웅(오른쪽), 허훈 부자. 박린 기자

“선수 시절 MVP, 득점상 등을 다 받아봤는데, 꽤 오랜만에 상을 받는 건 같다. 은퇴 직전에 받은 ‘모범상’이 마지막이다. 그때 ‘욱’하는 성질을 줄여서 모범상을 받았지.”

축하 인사를 건네자 허재는 ‘예능인’답게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선수 시절 MVP(최우수선수)를 4차례나 받았던 허재는 지난해 말 열린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예능 늦둥이’ 허재가 2019년 JTBC ‘뭉쳐야 찬다’에 처음 출연한 지 2년 반 만이다.

허훈은 “아버지가 감독으로 일하실 때는 염색도 안 하셨다. TV 화면엔 스트레스 받는 모습만 나왔다. 아버지 원래 모습이 바로 이거였는데 이제야 꾸밈 없이 편안한 모습을 팬들이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 아버지는 원래 항상 ‘웃는 상’이었는데 ‘카메라 마사지’까지 받으니 인상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허재는 현역선수일 때는 물론 지도자로 나섰을 때도 ‘버럭’하는 이미지가 강해 대중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예능에서 보여주는 그의 ‘허당 끼’ 가득한 모습을 대중이 좋아하고 있다.

허웅은 “아버지가 운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다니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새해에도 큰 웃음을 주시지 않을까”라고 했다. 허재 가 “올해는 대상도 노려볼까”라고 맞받자, 허훈은 “유재석 님, 강호동 님이 계신다. 아빠는 책을 좀 더 읽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펭수와 대결을 펼친 허재.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서 펭수와 대결을 펼친 허재. [유튜브 캡처]

최근 허재는 유튜브 채널 ‘모던 허재’를 개설했다. 그는 “농구 부활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KBL(프로농구연맹) 명예 부총재로 선임된 허재는 개막전에서 시투를 했다. 펭수와 농구 대결을 벌이는가 하면 댄서 아이키와 함께 ‘회전목마’ 춤도 췄다.

허웅은 올 시즌 올스타 팬 투표에서 16만3850표를 받아 이상민(삼성 감독)이 갖고 있던 역대 최다득표 기록을 19년 만에 갈아 치웠다. 허훈은 역대 2위(13만2표)에 올랐다. 허재는 “지난 시즌엔 작은 애가 팬 투표 1위였는데 이번에 큰 애가 1위를 했다. 농구계 대선배들이 ‘농구가 배구보다 인기가 떨어졌다’고 걱정하시는데 두 아들이 농구 흥행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또 “피부가 하얀 웅이는 이상민처럼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것 같다. 훈이는 항상 웃는 게 매력적이다. 내 매력? 나는 상남자 아닌가”하며 껄껄 웃었다.

허재는 “특히 웅이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팬들이 보약부터 시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준다. 하루는 우리 삼부자가 예능 촬영차 목포의 한 섬에 갔는데 여성 팬이 빵을 챙겨서 찾아왔다. 정말 고마워서 내 차로 항구까지 데려다 줬다”고 했다.

두 아들의 중고 시절. 왼쪽부터 허 감독의 부인 이미수씨, 허웅과 허재, 허훈. [중앙포토]

두 아들의 중고 시절. 왼쪽부터 허 감독의 부인 이미수씨, 허웅과 허재, 허훈. [중앙포토]

허웅은 지난해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뒤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허웅은 “지난해 생일날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다. 선물을 원주 숙소에서 서울 집으로 옮기기 위해 용달차까지 불렀다”고 했다. 홍삼, 로션 등은 물론 명품 선물까지 받았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허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팬들이 허재의 아내(이미수씨)에게 다가가 팔을 꼬집고, 차에 흠집을 낸 적도 있다. 허웅은 “아버지 때랑 인기를 비교할 수 없다. 당시 농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고 했다. 허재는 “예전엔 팬들이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서 보내줬다. 너희도 팬들을 위해 올스타전에 설렁설렁 뛰지 말고 존재를 ‘각인’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허재가 농구 코트를 찾으면 허웅과 허훈 형제는 부진한 편이었다. 과도한 부담감 탓으로 보였다. 허훈이 “엄마가 경기장에 오면 우리 팀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서 엄마는 ‘승리 요정’이라 불린다. 그런데 아빠만 오면 죽을 쑨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허재는 “야! 나도 너희들 경기를 볼 때면 화면에 얼굴이 10년은 늙어서 나온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도 허재는 “요즘 코트에 가면 ‘웅이, 훈이 아버지’ 또는 ‘허버지’라고 불린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며 “옛날에는 웅이와 훈이가 ‘허재 아들’로 불리며 어려움을 겪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훈이는 2년 연속 실력을 발휘하고 있고, 웅이는 올 시즌 기술이 향상됐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난 것 같아 기특하다”고 했다.

최근 한 프로농구팀은 허재에게 농구계로 돌아오라며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허웅은 “아버지는 예능에 잠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뼛속까지 농구인이다. 언젠가는 농구계로 돌아오실 것”이라고 했다. 허훈은 “아버지는 ‘농구대통령’이라 불렸지만, 저는 아직 한참 멀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보좌관 정도”라고 했다. 허웅은 “그럼 난 수행 비서 정도다. 아버지의 기록을 넘어서긴 어렵겠지만, 오랫동안 코트에서 뛰고 싶다”고 밝혔다.

셀카를 찍는 허씨 삼부자.

셀카를 찍는 허씨 삼부자.

형만 한 아우 없었다

2년 만에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
팀 허웅, 120-117로 팀 허훈 꺾어
허재 특별심판...MVP 영예도 허웅

특별심판으로 나선 허재(가운데)가 허웅(왼쪽)과 허훈 사이에서 팁오프를 하고 있다. 허웅이 동생보다 5cm 크다. [뉴스1]

특별심판으로 나선 허재(가운데)가 허웅(왼쪽)과 허훈 사이에서 팁오프를 하고 있다. 허웅이 동생보다 5cm 크다. [뉴스1]

16일 프로농구 올스타전이 열린 대구체육관.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전국에서 온 팬들로 북적였다. 입구에는 원주 DB 허웅의 팬클럽이 준비한 쌀 포대가 쌓여 있었다. ‘KBL 수퍼스타. 지금은 허웅의 시대’란 문구와 함께 쌀 ‘1638.50㎏’를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1638.50kg은 허웅의 올스타 득표수(16만3850표)에 맞춘 쌀 무게다. 수원 KT 허훈의 팬클럽도 쌀 1톤을 기부했다. 농구팬 김소담(19) 씨는 “허웅 선수를 보려고 서울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고 했다.

허웅 팬클럽이 허웅 이름으로 쌀 기부에 나섰다. 박린 기자

허웅 팬클럽이 허웅 이름으로 쌀 기부에 나섰다. 박린 기자

올스타전은 코로나19 여파로 2년 만에 열렸다. 대구에서 개최한 건 처음이다. 코로나19 탓에 육성 응원이 불가능한데도 만원 관중(3300명)이 꽉 들어찼다. 오랜만에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느낌이 났다. 경기에서는 ‘팀 허웅’이‘ 팀 허훈’을 120-117로 꺾었다. 앞서 올스타 팬 투표 1, 2위인 허웅과 허훈이 11명씩 자기 팀 선수를 뽑았다.

허훈 팬들도 허훈 이름으로 쌀 기부에 나섰다. 박린 기자

허훈 팬들도 허훈 이름으로 쌀 기부에 나섰다. 박린 기자

형제는 선수 소개 시간부터 경쟁을 펼쳤다. 허훈은 본인을 빼닮은 영화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복장으로 느리게 춤을 췄다. 이에 질세라 허웅은 이온음료 광고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아버지 허재는 심판복을 입고 ‘특별심판’으로 깜짝 등장했다. 허재는 두 아들을 향해 파울을 단호하게 불었다. 허재가 허훈의 트래블링을 지적하자 허훈은 억울하다고 항의했다. 허재는 3분도 안 돼 허웅에게 파울 2개를 선언해 관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허재는 1쿼터 5분여를 남기고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했다. 허웅은 “아버지가 있으면 경기에서 진다”며 허재를 코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올스타전에서 허웅(오른쪽)과 허훈(왼쪽)이 신경전을 벌이자 허재(가운데) 특별심판이 주의를 주고 있다. [연합뉴스]

올스타전에서 허웅(오른쪽)과 허훈(왼쪽)이 신경전을 벌이자 허재(가운데) 특별심판이 주의를 주고 있다. [연합뉴스]

2쿼터 도중 갑자기 영화 ‘오징어 게임’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육성이 흘러나왔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멈춘 가운데 허웅이 허훈을 제치고 골밑슛을 넣었다.

형제는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1승1패로 호각세다. 이날 올스타전에선 허웅이 21점, 허훈이 22점을 넣었다. 경기 결과에선 허웅이 판정승을 거뒀다. 허웅은 4쿼터 108-102에서 허훈의 블록슛을 피해 3점 슛을 꽂았다. 또 113-111로 쫓긴 2분23초 전, 또 3점 슛을 성공했다. 반면 허훈은 마지막 슛 찬스를 놓쳤다. 최우수선수(MVP)는 71표 중 62표를 받은 허웅에게 돌아갔다.

3점 슛 콘테스트에서도 형만 한 아우는 없었다.  허웅은 17점으로 예선 1위에 올랐다. 반면 허훈은 8점에 그쳐 예선 탈락했다.

허웅을 옆에 두고 돌파하는 허훈. [뉴스1]

허웅을 옆에 두고 돌파하는 허훈. [뉴스1]

허훈은 양홍석(KT) 등과 ‘엑소의 러브샷’, 허웅은 김선형(SK) 등과 2PM의 ‘우리집’에 맞춰 춤을 췄다. 선수 전원이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유행곡 ‘헤이 마마’ 춤을 다 같이 췄다. 덩크슛 콘테스트에서는 별명이 ‘베이비 헐크’인 하윤기(23·KT)가 셔츠를 찢고 초록색 ‘헐크’ 복장으로 나타났다. 공을 풍차처럼 휘돌려서 꽂는 ‘윈드밀 덩크’를 터트려 국내선수 우승을 차지했다.

허웅은 “선형이 형 등 형들이 밀어줘 MVP를 받은 것 같다. 팬들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MVP를 못 탔다면 죄송했을 것이다. 한국농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책임감을 갖고 보답하겠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표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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