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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가지 말라"던 美 전면봉쇄 때도 마트만큼은 안 막았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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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20년 5월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던 미국 워싱턴DC에서 대형마트 바깥에 주민들이 6피트(약 1.8m) 간격으로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매장 내 거리 두기를 위해 한 명이 나오면 한 명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입장객을 통제했다. 박현영 특파원

2020년 5월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던 미국 워싱턴DC에서 대형마트 바깥에 주민들이 6피트(약 1.8m) 간격으로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매장 내 거리 두기를 위해 한 명이 나오면 한 명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입장객을 통제했다. 박현영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에 상륙한 지난 2020년 초 워싱턴DC와 뉴욕, 캘리포니아주 등은 전면 봉쇄령(lockdown·락다운)을 내렸다. 코로나19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일단 모든 주민의 이동을 금지했다.

전면봉쇄령의 명칭은 '집에 머물라(Stay-At-Home)' 또는 '자택 대피령(Shelter-In-Place Order)' 등으로 주 정부에 따라 달랐지만, 긴급한 일이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취지는 같았다. 또 권고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다. 경찰이 단속했고, 위반 시 많게는 수천 달러에까지 벌금에 처해졌다.

그런데 일상을 멈춰 세우는 자택 대기 명령에도 예외는 있었다. 직장 출근을 포함해 집 밖 외출이 사실상 금지됐는데도 마트, 병원·약국, 은행, 주유소 네 곳 외출은 제한 없이 할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업종은 '필수 사업장'으로 지정해 반드시 문을 열도록 했다. 대형마트에 가는 것을 막지 않은 이유는 식료품 구매는 생존의 제1요소이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식품을 공급하는 육류 공장과 채소를 수확하는 농장 노동자들도 '필수 근로자'로 지정해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20년 5월 5일 보도에서 "거의 미국 전역에 자택대기령이 내려졌다"며 "대부분의 주에선 식료품과 필수품 구입, 병원 방문, 처방전 수령 등을 위해선 집 바깥으로 나서는 것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당시 워싱턴DC의 경우 대형마트 내 감염 통제는 한 번에 입장하는 고객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매장 안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인원수 만큼만 입장시키고, 한 명이 나오면 한 명이 들어가는 식으로 운영했다. 주요 대형마트 입구마다 긴 줄이 늘어선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사람 간 6피트(약 1.8m) 거리를 두면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방역 방침에 따른 결정이었다.

미국도 대형마트부터 스타트업까지, 식료품 배달 서비스 업체가 다양하다. 대도시에선 우버 이츠 등 음식 배달 서비스도 흔하다. 하지만 배달료가 꽤 비싸다. 또 이는 민간의 영역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마트에 가는 길을 전면 차단한 채 배달 서비스 등 대안을 이용하도록 유도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DC의 한 시장에 고객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실내 마트든 야외 시장이든 사람과 사람간 약 1.8m 거리를 두는 게 미국의 감염 예방 정책이다.[AF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DC의 한 시장에 고객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실내 마트든 야외 시장이든 사람과 사람간 약 1.8m 거리를 두는 게 미국의 감염 예방 정책이다.[AFP=연합뉴스]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지금보다 훨씬 클 때도 미국에서 마트에 가는 것은 막지 않았다. 대형마트든 동네 구멍가게든 식료품을 파는 곳은 똑같이 대했다. 같은 유통업이지만 옷과 화장품을 파는 백화점은 ‘비필수’ 업장으로 문을 닫게 한 것과 비교된다.

가혹할 정도로 전면봉쇄를 시행할 때도 주민들이 순순히 따른 것은 정부 정책이 나름 합리적이고 어느 정도는 과학에 기반을 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워싱턴DC나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헬스장과 실내 체육시설에 대해선 완전히 문 닫게 했다. 먹는 것 못지않게 운동도 생존의 필수 요소이지만, 운동은 사람이 드문 야외에서 마스크를 쓴 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수긍했다고 생각한다.

18세 이상 미국 성인의 73%가 백신 접종을 완료한 지금, 워싱턴DC와 버지니아·메릴랜드주 등은 '백신 패스'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공무원과 군인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100인 이상 민간 사업장도 접종 의무화를 시도했지만, 연방정부 차원에서 백신패스 카드는 손대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뉴욕시는 실내에서 식사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할 수 있다. 즉, 백신 접종을 안 했다고 모든 선택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지는 않는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와 체육관 등 실내 시설 이용 때도 백신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백신 접종 증명은 손님뿐 아니라 직원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손님의 이용만 제한하는 한국보다는 기준이 일관된다.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미국 등 서구 사회와, 공동체의 안전을 중시해온 한국은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다. 또 감염병 통제와 방역에서 미국이 ‘유일 모범’은 아니다. 하지만 방역 통제이건 백신패스건 이를 시행하려면 일관성과 합리성이 전제되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국민들이 불편과 손해를 감내하고 통제를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한국 방역 당국과 정부는 락다운 당시 미국의 사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 미국에선 대형 마트이건 편의점이건 동네 가게이건 ‘그로서리’는 막지 않았는지, 백신패스를 도입하는 지자체에선 어떤 선택권을 열어주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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