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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대신 살다 간 그녀를 또다른 아들들이 추모했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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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었다. 35년 전 아들이 나섰던 길. 아들은 걷다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어머니는 뒤따라 걸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지난 9일 아들 곁으로 떠나자 사람들은 그 길을 ‘민주의 길’이라 불렀다. 장례위원회가 35년간 민주화를 위한 길에 앞장섰던 배 여사의 인생을 비유한 표현이기도 하다.

9일 별세한 고(故) 배은심 여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고인에게는 많은 아들이 남아 있었다. 추모객들은 배 여사를 ‘어머님’이라 불렀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대학생이었던 세대, 현재 대학에 다니는 아들의 후배들이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지켰다. 영하 10도였던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 동산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다. 매서운 바람에 벌게진 손에 들린 많은 촛불이 깜깜했던 동산을 밝혔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故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故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이 열렸다. 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함민정 기자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故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故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이 열렸다. 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함민정 기자

자신을 이한열 장학생이라고 밝힌 대학생 2명이 지난 10일 오후 7시 고(故) 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고인을 추모했다. 함민정 기자

자신을 이한열 장학생이라고 밝힌 대학생 2명이 지난 10일 오후 7시 고(故) 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고인을 추모했다. 함민정 기자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안희제(27·남)씨와 사회학과 4학년 송보미(27·여)씨는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용기 있는 분이었던 것 같다. 많은 분이 이를 기억하는 것 같아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한열 장학생’ 출신이라고 했다.

연세대 4학년 이모(25·남)씨도 “큰 버팀목이 사라진 느낌이고 서운하다. 지금의 청년들은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목숨까지 포기한 이한열 열사와 어머님의 활동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2002년생이자 한양대생인 오모(20·남)씨는 “영화나 역사책을 통해 알게 됐고, 한국 민주주의에 기여하신 거로 알고 있다. 추도식에 오니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故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故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이 열렸다. 함민정 기자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故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故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이 열렸다. 함민정 기자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이화여대 재학생 손솔(27·여)씨는 이 문구를 외우고 있었다. 2018년 6월 故이한열 열사의 31번째 추모제에서 배 여사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손씨는 “그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80년대 참혹한 현실을 싸워주셨기에 현재가 있다고 본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촛불을 들고 울먹이던 한 중년 여성도 배 여사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연세대 86학번이라고 밝힌 김은아(54·여)씨는 “한열이와 같은 학번 동문이다. 30년 넘게 아들 대신 사셨는데, (그 대가를) 공짜로 얻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전교생이 하나가 돼 시신을 빼앗으려던 경찰과 대치했고, 김밥을 싸서 나르며 동참했다. 민주주의는 목숨 바쳐 싸워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 고(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고(故) 배은심 여사의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함민정 기자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 고(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고(故) 배은심 여사의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함민정 기자

흰머리의 중·장년층, 7살 아이와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도 추도식장에 보였다. 이날 늦은 시간까지 분향소와 추도식에 온 시민들은 “아들을 이제서야 만날 수 있게 됐다. 그곳에서 행복하시라”고 작별의 인사를 했다. 한동건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어머님이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았다고들 하는데, ‘대신’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도식이 끝날 무렵 또 다른 ‘어머님’의 소회를 들을 수 있었다. 2016년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희생한 고(故)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였다. 그는 기자에게 “‘남은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것이다’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며 “배은심 어머니처럼 나도 아들이 이루고자 했던 삶을, 남은 자로서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이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억한다는 건, 과거에 끝난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며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죽음들이 현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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