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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식은 사망" LG화학 종토방서 개미들 분노 쏟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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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한국거래소 앞에서 LG화학 소액주주들이 물적분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김연주 기자

지난 6일 한국거래소 앞에서 LG화학 소액주주들이 물적분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김연주 기자

“앙꼬없는 찐빵이 됐다.”
“엔솔(LG에너지솔루션) 상장하면 이 주식은 사망이다.”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 수요 예측 관련 기사가 쏟아진 10일, LG화학 종목토론실에는 이런 분노의 게시물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2차전지 전문생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에서 떼어낸(물적분할한) 자회사다. 상장만 하면 코스피 시가총액 3위에 안착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LG화학 주주의 속은 타들어 간다. LG화학의 '알짜 사업'인 배터리 사업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떼어내는 물적분할을 결정한 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물적분할 결정 당시에는 101만원(2021년 1월 14일 종가)까지 상승세를 타나 했더니 논란이 점화되자 LG화학의 주가는 이날 71만원으로 30%가량 떨어졌다. LG화학 주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부터 한국거래소 앞 단체 시위까지 불사하는 이유다.

LG에너지솔루션이 쏘아 올린 '쪼개기 상장'으로 논란은 올 한해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IPO 대어로 꼽히는 SSG닷컴도 이마트에서 물적분할한 뒤 재상장하는 자회사다. 카카오는 올해에는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 모빌리티도 분할한 뒤 상장할 계획이다. CJ는 인적분할한 자회사 CJ올리브영을 상장 예정이다.

물적분할 결정된 뒤 LG화학 주가 30% 하락

물적분할이 문제가 되는 건 모(母)회사 주주들이 받는 피해 때문이다. 물적분할은 기존 회사(모회사)가 신설회사(자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에게는 신설 자회사 주식을 주지 않는다.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의 지분은 낮아지게 된다.

문제는 자회사 상장 때 발생한다. 그만큼 모회사의 기업가치가 깎이면서 주가 하락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지주사 디스카운트(저평가) 현상이다. 카카오의 주가가 부진한 것도 물적분할의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 등 3개 자회사를 상장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에서 주가가 오를 때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며 거품이 빠지자 (지주사) 디스카운트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며 “카카오엔터와 모빌리티까지 올해 상장할 경우 카카오는 껍데기만 남는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에 물적분할로 자금 조달과 경영권 유지 가능

소액주주의 반발에도 기업이 물적분할을 선호하는 것은 ‘자금 조달’과 ‘경영권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어서다. 유상증자 등을 하면 기존 지배주주의 보유 주식 비중은 줄어든다. 반면 물적분할은 기존회사에서 알짜부문을 떼어낸 자회사를 상장해 자금을 모으고, 모회사 주식은 지분을 희석하지 않고 보유할 수 있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배주주도 주가 하락의 피해를 보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기업) 지배권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물적분할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의 피해에도 쪼개기 상장이 빈발한 것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국내 주식시장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주요국도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만 주주들의 소송과 반발을 고려해 자제한다. 구글의 경우 지주회사 알파벳을 상장한 뒤 기존 주식시장의 자회사를 모두 상장폐지했다.

자회사 50%이상 보유한 모회사 해외상장사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회사 50%이상 보유한 모회사 해외상장사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상법상 보호대상인 회사의 이익을 회사 계좌의 이익에 한정하고 주주의 직접 이익은 포함하지 않다 보니, 경영진들은 주주의무보호도 지지 않고, 개인투자자는 소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관휘 교수는 "주주들의 반대나 주주권 행사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물적분할한 뒤 상장하는 것을 가장 쉬운 자금조달 선택지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선주자 공약 제시, 거래소 심사 강화 예고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자 양당 대선주자 모두 물적분할 제도 개선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동시 상장 금지와 모회사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주자고 제안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물적분할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거래소도 ‘깐깐한 심사’를 예고했다. 거래소는 물적 분할 후 상장할 때 주주소통이 있었는지와 주주보호책이 있었는지 등 여부를 앞으로 보다 면밀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보는 “기존에도 고려했던 것이지만 앞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겠다는 의미고, 이는 시장에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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