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는 집값 내려간다는데…전망치 못 발표하는 정부통계기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2022년 임인년 신년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집값 하향안정세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2022년 임인년 신년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집값 하향안정세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뉴스1

강력한 대출규제로 주택 거래가 크게 줄어들고, 이전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가 되는 사례가 늘어나자 최근 정부는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잇따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공인하는 부동산 통계 담당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은 올해 집값 전망치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통계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진 공기업이 전망치를 발표하지 않는 것을 놓고 정부 눈치를 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예상과 다른 전망치라서 발표를 못 한다는 것이다. 민·관 연구기관들은 일제히 올해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최근 주택 가격 하락세를 확고한 하향 안정세로 이어가겠다"고 말했고, 이어 경제부총리(홍남기),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박수현), 국토교통부 장관(노형욱) 등도 비슷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얼마나 떨어질지"에 대한 물음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지난 4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추세적인 하락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몇 퍼센트 하락할 것으로 보느냐"고 질의하자 노 장관은 "시장 수치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송 의원이 재차 "올해 부동산원이 (집값 전망치 발표를) 준비를 하고 있냐"고 묻자 노 장관은 즉답을 피하며 "공식적으로 전망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되풀이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은 매년 초 발표하던 집값 전망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원은 지난 2015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기자간담회 형식의 부동산 시장 전망 발표회를 진행해왔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네 차례 연속 이 행사를 열지 않고 있다. 지난 세 차례 전망 발표를 건너뛰면서 부동산원은 "코로나 19 여파로 오프라인 간담회 개최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올해는 "집값 전망 모형의 고도화가 진행 중이고, 그 진행 상황에 따라 발표 시기가 유동적"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원 통계 자료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 수립의 근거로 활용됐다"며 "공신력 재고를 위해 시장 예측에 신중을 기하는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발표가 더 늦춰질수록 불필요한 억측이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건설부동산업계에서는 부동산원이 시장 전망치를 갖고 있지만, 발표를 못 하는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집값 하락 안정세를 주장하는데, 정부의 주장과 실제 전망치가 달라 발표를 못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집값이 하락세로 완전히 돌아서진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상승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의 집값 하락세는 강력한 대출규제 등 수요 억제의 영향이 크고, 집값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인 공급 부족 문제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선, 지방선거 등 집값을 자극할 변수도 적지 않다. 특히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경제전망을 하면서 주택 가격이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올해 전국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을 3.7%로 전망했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은 아파트값은 전국 3.5%, 수도권에서는 4.5%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산연은 "누적된 공급 부족과 경기회복으로 상승률은 지난해보다 낮아지지만, 인천·대구 등 일부 공급과잉지역과 단기급등 지역을 제외하고는 하락세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전국 5%, 수도권 7% 상승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전국 2%, 수도권 3% 정도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도 5.1% 상승을 예측했고, 기재부는 이를 근거로 올해 세입예산을 편성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원의 올해 집값 전망치 발표가 미뤄지면서 "정부가 3월 대선을 앞두고 섣불리 '집값 안정'을 예단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부가 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 같은 단기 지표의 변동을 근거로 집값 안정을 말했다가 집값이 다시 오른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집값 전망치를 발표한 2020년 부동산원의 예측 결과는 실제와 크게 달랐다. 당시 부동산원은 주택가격과 전셋값이 모두 하락(-0.9%, -0.4%) 한다고 봤지만, 실제 그해 주택가격은 5.3%, 전셋값은 4.6% 상승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