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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주처럼 신비한 해파리 동공…과학, 예술이 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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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19면

서울예대 ‘나노·바이오·네이처’ 전

오상택 작가의 설치미술 ‘633nm’. [사진 서울예술대학교]

오상택 작가의 설치미술 ‘633nm’. [사진 서울예술대학교]

해파리와 눈을 맞춰 본 사람이 있을까. 9일까지 서울예술대학교 남산캠퍼스 심재순관에 가면 해파리의 동공을 마주한 인류 최초의 몇 사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오상택 작가가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과 협업한 작품 ‘633nm’에 거대하게 확대된 해파리의 눈동자는 언뜻 섬뜩하지만, 그자체로 마치 소우주를 품은 듯 신비하고 몽환적이면서 도전적이기도 하다.

당신을 바라보는 해파리의 눈은 서울예대와 IBS가 공동주최한 ‘비욘드 더 렌즈: 나노·바이오·네이처’전이 제시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나노·바이오 아트 분야를 소개하는 전시인데, 낯설다고 우리 삶과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다. 코로나 시국의 구원자, mRNA백신을 가능하게 한 나노·바이오라는 일반인에게 진귀한 미래기술을 예술을 통해 확 접근성을 높이는 전시로,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탐색하는 ‘뉴폼(New Form)아트’의 탄생을 알리는 장이다. 첨단 현미경 속 나노(10억분의 1) 공간에서 관찰되는 놀라운 형상을 소재 삼은 미디어아트·사진·회화들은 존재하지만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생명 깊숙한 곳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이다.

‘633nm’ 작업 과정. [사진 서울예술대학교]

‘633nm’ 작업 과정. [사진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과 과학은 물과 불처럼 상극인 것 같지만 사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예술은 실재하는 세계가 작가의 눈에 가한 충격을 작가가 정신 안에서 형상화시켜 창출해낸 세계다. 그런데 존재하나 감각하지 못했던 나노 단위의 생명과 자연세계를 렌즈를 통해 실재하는 세계로 열어주는 게 과학이다.

요즘 대덕 연구단지 과학자들은 네이처 등 학술지 논문 게재를 위해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는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는 예술전공 학생이 전자현미경 실험실에서 협업하며 작품을 만들게 한다. 지난해 네이처는 ‘과학자-예술가 협업이 성과를 내는 방법’ ‘예술이 성공적인 과학 연구를 이끄는 방법’이라는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서울예대도 오랫동안 이런 흐름을 주목해 왔다. 40여년 전인 1983년 바이오아트 선구자인 로만 비쉬니악을 초청해 3주 동안 특강을 열었고, 뉴욕의 실험예술단 라 마마와 인터넷 화상 공연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해 12년째 예술과 기술 융합의 공연을 실험하고 있다. 라 마마에서 연출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유덕형 명예이사장이 일찍이 이 분야에 눈을 떴고, 예술 창작자들이 신의 창조로부터 영감을 얻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속해 온 일이다.

‘비욘드 더 렌즈’는 IBS가 제공한 이미지 자료를 활용해 이런 의지를 본격적으로 구현한 첫 전시라 주목된다. 사진·디자인·연극·음악 전공자까지 장르를 불문한 서울예대 교수와 동문 작가들이 ‘렌즈 너머 세계’의 시각화에 도전했고, 재학생 대상의 공모전 수상작까지 함께 선보이고 있다.

조상 작가의 미디어아트 ‘바이러스를 넘어’. [사진 서울예술대학교]

조상 작가의 미디어아트 ‘바이러스를 넘어’. [사진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 아트 전공 조상 교수와 IBS 혈관연구단이 협업한 대형 미디어 아트 ‘바이러스를 넘어’는 바이러스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비강 안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추출한 고규영 혈관연구단장의 성과물들을 토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고깔 해파리를 합성해 상호 공존하는 생명체의 모습을 스토리텔링하듯 풀어냈다. 오프닝 행사에는 전시와 함께 스트릿 댄스 퍼포먼스까지 펼치며 인간과 바이러스의 대립과 공존의 이야기를 멀티미디어로 확장해 보여줬다.

연극 전공 김제민 교수의 ‘I Question 6.0’은 인공지능(AI)과 관람객이 대화를 주고받는 미디어 아트 작품. IBS에서 연구한 생명과학의 신비로운 사진들을 제시하고 관람객에게 ‘이 사진은 예술적인가?’라고 질문하면 관람객은 핸드폰을 이용해 게임하듯 소통하고,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하면서 예술과 과학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하게 된다.

JTBC 슈퍼밴드 시즌1에서 와인잔, 게임 리모콘 등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음악을 들려줬던 DJ 프로듀서 디폴(김홍주)과 길리의 ‘Bio Shock’도 흥미롭다. 말이 없는 식물의 언어를 전기를 통해 듣고 풀어내는 접근인데, 식물로부터 나오는 파장을 전자음과 영상으로 변환하는 즉흥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과 식물의 교감을 시도한다. 학생 공모전 대상을 받은 팀 민들레의 ‘그루’는 게임 형식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여 나무와 유대를 쌓아간 끝에 생명에 대한 윤리적 쟁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전시를 기획한 이영렬 서울예대 경영 부총장은 “국제적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 평가(Nature index)에서 세계 17위에 오른 IBS와 한류의 산실로 평가받는 서울예대가 최첨단 과학 분야인 나노·바이오를 기반으로 예술창작에 도전한 전시”라며 “미래의 핵심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교육에 반영해 창작을 본격화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덕형 명예이사장도 “나노·바이오 아트에서 예술가의 몫은 과학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창의력으로 메워 과학을 한 걸음 진보하게 하는 것”이라며 “나노·바이오 아트가 생명과 자연의 본질을 창작에 반영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할도 해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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