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CTV에만 다섯차례 찍혔는데…‘점프 월북’ 못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군이 지난 1일 탈북민 김모씨가 철책을 넘는 상황을 석 대의 감시카메라(CCTV)로 다섯 차례 포착하고도 월북을 막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군이 실제로 김씨를 데려갔는지도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5일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현장 검열 결과에 나타난 내용이다. 검열 결과 감시장비 부실, 현장 지휘관의 오판 등 군의 경계망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 CCTV 카메라에 찍힌 김모씨의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 CCTV 카메라에 찍힌 김모씨의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합참은 김씨가 당시 검은색 모자와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배회하는 모습이 찍힌 CCTV 정지화면을 이날 공개했다. 1일 낮 12시 51분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길목의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초소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감시장비에 처음 포착됐다. 김씨는 ‘민통선 이북 지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군의 경고방송이 나오자 인근 마을로 우회해 일반전초(GOP) 철책에 도착했다.

그 뒤 이날 오후 6시 36분쯤 채 4분도 걸리지 않고 이중 철책을 넘었으며 그 모습이 주변 CCTV 석 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다섯 차례 찍혔다. 철책의 광망(철조망 센서)도 김씨의 월책 순간 압력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렸다. 소초장 등 여섯 명의 초동 조치 병력이 6분 뒤 현장에 도착했지만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감시병이 상황을 놓쳤는지 판단하기 위해 CCTV 영상을 돌려보는 과정에서도 김씨의 월책 장면을 발견하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매뉴얼엔 상황 발생 이전 30분간을 확인하게 돼 있는데, 영상이 저장된 서버의 시간이 실제 시간보다 4분 정도 늦어 해당 장면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계병들이 영상 저장 서버의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근무했다는 뜻이다.

사후 조사 결과 이중 철책 너머 눈길 위로 김씨의 족적이 선명했다. 철책 상단의 윤형 철조망에선 패딩 점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흰색 깃털까지 발견돼 월북 흔적이 뚜렷했다.

탈북민 김모씨의 월북 이동 경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탈북민 김모씨의 월북 이동 경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군은 3시간여 뒤 열상감시장비(TOD)로 비무장지대(DMZ)에서 이동 중인 김씨를 발견했지만 상황을 오판했다. 합참 관계자는 “GOP 대대장이 초기에 지형과 이동방향 등을 고려해 귀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펴다 그 뒤 월북으로 인식했지만, 야간인 데다 눈이 많이 쌓이고 거리가 멀어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애초 군 당국은 김씨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뒤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4명이 접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TOD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들은 김씨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해 접촉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실제로 김씨가 북한으로 갔는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5일 오후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원인철 합참의장은 “군사 대비 태세 경계 작전을 책임지는 합참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국방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군의 경계 실패를 질타하면서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9·19 남북 군사합의로 군사분계선(MDL)에서 가장 가까운 전방초소(GP) 병력을 철수한 것과 관련해 “사실상 감시를 포기하고 길을 내어준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경계 실패에 대해선 분석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도 “남북 군사합의가 문제라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