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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성덕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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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성덕임의 로맨스를 다뤘다. 숙종과 희빈 장씨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이들 또한 흔치 않은 이야기를 남겼다. 성덕임은 정조의 후궁 중 유일하게 승은(국왕과의 잠자리)을 입은 여성이다.

훗날 정조는 그의 묘지명을 지으며 성덕임은 정숙하고 현명했으며 다양한 기예를 갖춘 여성이었다고 회고했다. 여러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던 정조는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로맨스는 정조의 일방적 구애에 가까웠다. 그는 승은 기회를 완곡하게 피했지만, 정조의 거듭된 명령과 그의 하인이 벌을 받는 상황까지 처하자 그때야 받아들였다고 한다.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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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낳은 아들은 문효세자가 됐다. 성덕임은 의빈 성씨에 오르고 오빠도 관직에 오르는 등 주목받는 외척이 됐다. 하지만 문효세자는 네 살 때 홍역으로 목숨을 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 아이를 임신한 의빈 성씨도 병으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배후설도 거론된다. 중인 출신으로 처가의 배경이 든든하지 않았던 점과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세자를 낳았다는 점, 출산이 여전히 가능했다는 점 때문에 권력층에서 개입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왕실의 외척이 되려면 거대한 권력 게임을 감당해야 했다. 성덕임이 임금의 승은 기회를 마다한 것은 복잡한 정치 싸움의 한복판에 던져지는 것을 우려해서는 아니었을까. 권력자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휘둘리는 여성들의 상황은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