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인간이 세상 중심인가, 크고 길게 봐야 더 잘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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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빅 히스토리’ 열풍이 말하는 것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요즈음 우주나 지구나 생명이 역사의 주어로 쓰인 책이 늘고 있다. 2009년 신시아 브라운의 『빅 히스토리』에서 시작해 지난해 말 박정재의 『기후의 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이 독자를 매혹하는 중이다. 최근 나온 책만 해도 조지프 르두의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역사』, 앤드루 놀의 『지구의 짧은 역사』, 마크 모펫의 『인간 무리』,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 등 수십 종이 눈에 띈다. ‘빅 히스토리’ 열풍이다.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 좁게 인식해 왔다. 그러나 크게 보면 더 잘 볼 수 있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은 제러드 다이아먼드의 『총 균 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잘 보여 준 바 있다.

한 지역에, 또는 한 시기에 얽매인 좁디좁은 시야를 넘어서 세상을 더 넓고 더 길게 조망할수록 세계 전체에서 실제로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있고, 역사의 실체와 인생의 진실에 더욱 가까이 이를 가망성이 높다. 자신보다 거대한 것을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 지혜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책들을 살펴보면, 역사의 풍경이 바뀐다. 기후·지진·화산·자원 등 지구 역학이 인간 행위를 규율하는 주요 행위자임이 분명해지고, 바이러스·세균·식생 등 생명 진화 역시 인간 운명을 좌우하는 중심 요소임이 확실해진다. 인류 역사는 지구나 우주의 역사와 겹쳐 있고,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 생명 진화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우주와 지구, 생명과 인간의 궤적 돌아본 역사서 잇따라
자신보다 거대한 것을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 지혜의 핵심
인류 진보 가능케 한 이성·과학·휴머니즘·진보의 힘을 믿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 제압해 세계를 개선하는 방안 찾아야

인간에 대한 생물·세균의 반격 강해져

지난해 초 나온 『옥스퍼드 세계사』는 지구와 생명을 중심에 놓으면, 역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문명도, 국가도, 영웅도 이제 역사의 주어가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약 20만 년 전에 시작된 인류사는 ‘빙하의 자식들, 점토와 금속으로, 제국들의 진동, 기후의 반전, 대가속’ 등 5단계로 나뉜다. 빙하·물·불·토양·기후 등 지구가 중심에 놓여 무대를 제공하고, 바이러스·세균·동물·식물 등 생태계의 작용이 강조되는 가운데, 이에 적응하려 애쓰는 와중에 놀라운 문화적 다양성을 이룩한 인류의 역사가 펼쳐진다.

인류의 움직임은 발산·수렴·대가속 세 가지로 압축된다. 동아프리카 한구석에서 시작된 호모 사피엔스의 발자취는 1000년 전 남태평양의 섬들에 정착할 때까지 끝없이 퍼져나가면서 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제도와 문화를 산출했다. 그러나 500년 전부터는 수렴이 시작되어 인류 전체가 하나로 엮이기 시작했고, 200년 전부터는 변화가 극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인간 활동이 지구 전체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인류세가 시작되었다.

『지구의 짧은 역사』에 따르면 인간 지배가 선명해질수록 생명과 지구의 되먹임 활동도 강력해졌다. 바이러스와 병원균의 진화가 감염병을 유발하고, 급격히 진행된 대규모 멸종은 생태 균형을 무너뜨렸다. 뜨거워진 공기와 바다는 지난 2만 년 동안 인류에게 극히 유리했던 기후 환경을 파괴하는 재앙을 일으킴으로써 문명의 존속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이다.

그러나 역사는 지혜를 제공한다. 『우리 인간의 깊은 역사』는 20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나타난 인간의 자기 주지적 의식, 즉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고 표상하는 능력이 인간과 자연을 구별 짓고, 나(우리)와 너(그들)를 나누어 서로 싸우고 해치고 죽이는 개인적·이기적 역사를 낳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 의식은 인류 전체의 선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 본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도덕 감정도 진화시켰다. 우리 안의 이타성,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기를 수정해가며 타인과 공존

『인간 무리』는 인간이 타자와 불화하는 성향이 있는 한편 계획적 자기 수정을 통해 타인과 공존하는 능력도 있다고 말한다. 인간 집단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는 가장 훌륭한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발명하고, 외모·피부색·신분·능력 차이 등을 뛰어넘어 ‘인류’라는 공통된 인간성을 찾아냈듯이, 우리는 종으로 존속해야 개체로서도 존속할 수 있음을 깨닫고 인지적·문화적 진화 방안을 이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은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파멸만 생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성의 힘을 작동시켜 이전에는 인류가 도무지 경험하지 못했던 눈부신 진보도 이루어냈다. 공중 보건을 도입하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질병을 정복하고 평균수명을 늘렸다. 비료를 개발하고 품종을 개량하며 기계를 도입하는 등 녹색혁명을 일으키고 원조 체계를 도입해 굶어 죽는 이들을 줄였다.

국제기구를 만들어 자유무역을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억제함으로써 풍요롭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었고, 보통교육을 실시하고 정보망을 확산해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했다. 노동 시간과 최저임금을 법으로 강제해서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했고, 인종주의를 물리치고 아동 착취를 금지하며 소수자 배려를 상식으로 퍼뜨렸다.

잔혹한 세상에서 찾는 희망의 불빛

핑커는 더 오래 살고 더 적게 고통받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영리한 세상을 이룩한 이성·과학·휴머니즘·진보의 역능(力能·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을 믿고 우리 자신의 어두운 본성을 제압해 세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자고 제안한다. 인간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는 근시안을 넘어서고,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를 우리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조리 소진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욕망을 절제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지식의 힘을 지구와 생명과 인류의 공존에 쓴다면, 인류에게는 안전하고 온전한 세계를 후대에 물려줄 능력이 충분하다.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말한다. “더 멀리 보세요. 세계는 끝이 없고 무지갯빛입니다. 우리가 불안정과 불확실 속에 있다는 사실이 삶을 헛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삶을 더 소중한 것으로 만들죠.”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계는 지상에서 보는 세계와 다르다. 세계를 더 넓게, 더 길게,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잔혹한 세상에서 우리는 희망의 불빛을 찾을 수 있다.

네트워크 시대, 민주주의가 소중한 이유

『전체를 보는 방법』에서 존 밀러 미국 카네기멜런대 교수는 “세상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정밀하게 살핌”으로써 전체 세계를 알 수 있다고 믿었던 사고방식이 도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을 넘어선다. 부분들의 상호작용은 합쳐질 때 부분과 다른 전체를 창발한다. 유전자를 이루는 요소는 넷뿐이지만, 그들이 결합해서 생성하는 생명체는 무한히 다양하다. 따라서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환원적 주장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거엔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 분리된 지역에서 나뉘어 살았기에 마을이나 도시나 국가 규모를 넘어서 세계 전체를 사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인류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극도로 복잡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자급자족 대신 무역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를 마련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자금을 조달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한구석에서 일어난 혁신이 순식간에 인류 전체로 퍼지기도 하고, 낯선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사람이 팬데믹을 유발하기도 한다. 금융 위기, 기후 재앙, 자원 고갈, 테러 확산 등 현재 인류가 직면한 주요 문제 중 어느 하나도 부분만 알아서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이기심을 부추겨서 파탄을 재촉할 뿐이다.

다행히 인공지능 등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은 인류는 상호작용하는 세계의 복잡성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법을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가령 복잡한 세계에서 이질성과 우발성을 제거하는 대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협력을 촉진하는 법을 안다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인류 역사는 침묵하고 복종하는 중앙집권보다 시끄럽고 반항하는 민주주의가 좋은 결과를 낳음을 증명했다. 인구가 성장하면 도시화가 늘면서 에너지 효율성이 좋아지고 우발적 창조성이 증가한다. 그러나 범죄나 질병을 균형 있게 조정할 수 없다면 파멸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전체를 보는 방법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통찰력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