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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시진핑, 10억회분 백신 기부로 패권 도전...미국은 중국 때리기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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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질서와 새해 전망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인류 역사는 중대한 발명·발견과 사건으로 나뉘곤 한다. 바퀴·문자·증기기관·인터넷의 발명과 신대륙의 발견, 세계 1·2차대전 등이 이런 사례다. 여기에 해당하는 21세기 사건은 코로나19의 발발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별 이론이 없다. 코로나 확산 이후 회사로 출퇴근하는 수백 년 된 전통은 재택근무로 변했고,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을 기피한다. 국제 질서 역시 이런 대격변에서 자유롭지 않다. 새해를 앞두고 3년째를 맞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 상황과 함께 내년 세계정세를 짚어본다.

국제기구 대신 국가의 중요성 부각 #코로나 대처 잘못한 서방의 추락 #중국, 백신외교로 위상 격상 노려 #한·일 접촉, 7월 선거 후 시작될 듯

국제화의 퇴조
코로나 발발 이후 가장 뚜렷한 현상은 '국제화(globalization)'의 퇴조다. 각국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자국 내로 들어와 퍼질 것을 우려해 너도나도 국경을 걸어 잠갔다. 자연히 전 세계를 누비며 사업을 벌여온 다국적 기업들이 곤경에 처하게 됐다. 국제적인 인적 왕래가 차단되면서 민간 차원의 국제 교류도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경제적, 문화적 차원에서 빠르게 진행됐던 국제화의 흐름이 한순간에 막혀버린 셈이다.
코로나가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은 2019년 12월. 이후 2020년 한해 해외 여행자 수(공항 도착 인원 기준)는 3억8100만명을 기록, 한해 전 14억6100만명에 비해  74%나 떨어졌다. 대략 4분이 1로 쪼그라든 셈이다. 이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관광산업이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줄어든 전 세계 관광 수입은 1조 3000억 달러 정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9년 금융위기 피해액의 11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니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전체 국민소득의 3분의 2가 관광에서 나오는 몰디브의 경우 2020년 4월부터 9월까지 입국한 관광객 수는 전년도보다 97%나 줄었다. 마카오·바하마 등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명 중 1명은 관광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관광 산업이 되살아날 수 없으며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0일 테워드로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내년 코로나 19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부스터샷이 보급되더라도 코로나가 쉽게 퇴치되진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WHO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 중국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불렀다. [AP]

지난 20일 테워드로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내년 코로나 19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부스터샷이 보급되더라도 코로나가 쉽게 퇴치되진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WHO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 중국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불렀다. [AP]

다자주의의 몰락과 국가의 부상
코로나 확산 이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국가 아닌 국제기구가 더 중요시되는 분위기였다. 환경 및 에너지 문제 등으로 국가 간 협력과 '글로벌 거버넌스 (global governance)'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한순간에 돌변했다. 코로나 예방 및 치료 등을 정부가 담당하면서 국가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기 때문이다.  특히 백신 확보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자국 정부의 성과에 국민의 눈길이 쏠렸다.
반면 코로나를 제대로 막았어야 할 국제기구는 무능을 드러내면서 세계적인 불신을 샀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의 발생지로, 초기 대응 실패라는 비난을 받는 중국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줘 전 세계적인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코로나 19 검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 20만 명 안팎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신화통신]

지난 21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코로나 19 검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 20만 명 안팎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신화통신]

미국·유럽 등 서방의 추락
이번 코로나 사태의 특징 중 하나는 서방 선진국들의 대응 실패다. 감염률 및 사망률 면에서 아시아 등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미국은 세계 최대의 코로나 감염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실제로 요즘 미국에서는 하루 20만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코로나로 죽은 숫자는 80만명을 넘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코로나 백신 확보 경쟁에서 노골적인 자국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백신 싹쓸이'를 했던 것이다. 영국·캐나다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 결과 주요 20개국이 그동안 생산된 전체 백신의 89%를 챙겼다. 반면 이달 9일 현재 저소득 국가 국민 중 한 번이라도 백신을 맞은 사람의 비율은 6.3%에 불과하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남아도는 데 아프리카의 빈국에서는 맞고 싶어도 맞을 백신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틈을 타 중국은 시노백·시노팜 등 자국산 제품을 후진국들에 지원하며 백신 외교를 벌여왔다. 미국이 자국민용 백신 확보에 혈안이 된 사이, 전 세계 80여 개국에 공짜로 자국산 백신을 나눠줬다. 그간 세계의 리더 노릇을 해왔던 미국의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이에 더해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1월 말 앞으로 아프리카 및 아시아 저개발국가에 총 10억회 분의 중국산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2022년 국제정세 전망

2022년 국제정세 전망

신정부 출범 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 
이런 상황 변화 속에서 내년 한반도와 주변 국제 정세는 요동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선 남북관계는 내년 5월 새 정부 출범 이전까지는 교착 상태에 빠질 듯하다. 남북 간의 새 협상이나 사업을 하더라도 북한이 새 정부와 시작하려 할 게 뻔한 까닭이다. 현 문재인 정부는 임기 끝까지 종전선언을 추진하려 하겠지만,앞서 지적한 이유로 별 진전을 보지 못할 공산이 크다.
새 정부 출범 후 북한은 한편으로는 대화를 모색하면서도 동시에 한두 달 내로 첨단 미사일 시험과 같은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농후하다. 과거 북한은 남측, 또는 미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거의 핵실험, 또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 시험과 같은 도발을 감행하곤 했다.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새로운 협상 계기를  마련하는 전략인 셈이다.
한편 김정은 정권은 코로나 발발 이후 2년째 굳게 닫았던 국경을 열고 제한적이나마 외부와의 소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발발 이래 북한은 국경 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며 고립정책을 지속해 왔다. 이 결과 필수 물자의 반입조차 막혀 국내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새해 들면서 비료 등에 대한 제한적 수입을 허용하는, 봉쇄 완화 정책을 택할 공산이 적지 않다.

지난 9월 북한이 공개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의 발사 모습. [뉴스1]

지난 9월 북한이 공개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의 발사 모습. [뉴스1]

미·중 갈등 격화될 듯
미·중 갈등은 내년 들어 더 거세질 확률이 높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및 군사 배치 전략 등에 대한 검토를 끝내면서 대중 공세를 강화할 게 분명한 까닭이다. 특히 내년 11월에는 미 중간선거가 있어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야 할 입장이다. 중국 압박은 이념을 초월한 인기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첨단 제품과 관련된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한편 쿼드 확대 등 대중 봉쇄를 위한 우방국과의 스크럼 짜기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중 간 마찰이 군사적 충돌로 번질 위험은 적다. 무엇보다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미국보다 열세라고 느끼는 중국이 물리적 충돌만은 피하려는 신중한 자세로 나올 게 분명한 까닭이다. 결국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국 우위의 양국 간 세력 균형은 계속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정권 성향에 좌우될 한·미 관계
돌발 변수가 없는 한 한미 관계는 지금과 같은 기조가 유지될 거로 전망되고 있다. 전임 트럼프 때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 입장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게 원칙인 까닭이다. 이번 한국 대선에서 누가 되든,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는 그간의 외교 원칙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게 분명해 한·미 관계 역시 현재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재명 후보는 남북 교류를 중시하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인 반면 윤석열 후보 측은 북한 비핵화에 방점을 두고 있어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거세질 중국의 압박
중국에 있어서 2022년은 여러모로 중요한 해다.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 각국과의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한편 10월쯤으로 예정된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성공시켜야 한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미국과 다른 친미 국가들의 대중 견제와 압박도 어느 때보다 거세질 게 분명하다. 자연히 미·중 사이에 낀 한국에게 자기편에 서라는 중국의 요구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을 무시 못 할 한국으로서는 미국 주도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면서도 대중 관계 역시 우호적으로 유지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내년에도 계속해야 할 형편이다.

지난달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기시다 정권은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후에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연합]

지난달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기시다 정권은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후에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연합]

일본, 7월 선거 후 관계 개선 나설 듯 
내년 일본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다. 집권 기시다 정권으로서는 선거를 망칠 수 있는 정책은 일절 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 위안부 문제에 이어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로 꽁꽁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풀려는 시도도 자칫하면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7월 선거 전까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일본 쪽에선 나오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총리는 국제통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관심이 큰 비둘기파다. 따라서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와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는 한 일본 측에서도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