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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일자리·교육문제 해결, 새 정부는 민간에 권한 넘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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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방향 전환 절실한 청년 정책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세계는 팬데믹으로 어두운 새해를 맞고 있다. 우리도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어수선하다. 대한민국의 향후 5년 항로를 고민해야 하는데 여야 간 상호 비방만 귀에 들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 시간 위기가 아닌 해가 없었지만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닥친 위기는 전에 볼 수 없던 것이다. 세계를 지탱하는 세 축이 동시에 이동하는 초유의 일이 될 것 같다. 이번에는 한국도 제대로 항로를 찾지 못하면 자칫 침몰할 수 있다.

중앙정부 개입 줄이고 청년 주도형 혁신 생태계 마련해야
첨단기술부터 사회개혁까지 아우르는 ‘메가 프로젝트’ 추진
세계의 문제는 한국의 문제, 기후·환경 등 글로벌 감각 갖춰야
대학이 창업·혁신의 허브, 교육부 규제 없애는 정부개혁 필수

첫째, 지구 생태계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팬데믹은 기후변화가 한계점에 도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재앙의 예고편이다.

둘째,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려 하면서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정학의 축이 크게 이동할 때 주권을 빼앗기는 수모까지 당했다.

셋째, 반도체·생명공학·빅데이터·5G 네트워크·인공지능(AI)·양자 컴퓨팅 등의 비약적 발전으로 과학기술 혁신의 축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글로벌 산업구조와 일자리가 급변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를 받치는 세 축이 이동하면서 대한민국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흔들리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AI 기술로 맞춤형 교육 제공해야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미디어 플랫폼 사이트에 대한 경계를 촉구했다.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감시 자본주의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천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한편 악마에게는 확성기를 주어 우리의 분노와 감정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웅변적으로 경고한 말이다.

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의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mRNA 백신이 코로나19 발발 이후 10개월 만에 출시된 것은 과거 백신 개발이 10년 이상 걸리는 것을 단축한 과학기술의 큰 성과였지만, 새로 개발한 백신을 세계 시민에게 골고루 배포하지 못한 탓에 팬데믹이 지속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나 위기는 항상 기회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진보해왔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만약 미국과 중국이 팬데믹과 기후변화라는 엄청난 파도 속에서 서로 같은 배에 타고 있는 위기 상황을 인정하고 서로를 바꾸려고만 하지 않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함께 항해할 수 있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스코 야호 전 핀란드 총리의 제안은 또 어떤가. 기존 일자리가 급격히 파괴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가 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유연한 노동시장, 새로운 인재상, 그리고 일과 복지의 창의적 융합을 강조한다. 특히 개인 역량과 능력에 맞춰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AI 기술을 교육에 과감히 도입하고, 일과 복지의 창의적 융합을 위해선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모두가 은퇴하는 표준화된 정년제도를 맞춤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시민 모두를 돕는 스마트 파워

우리는 세계를 뒤흔드는 세 축의 이동과 이에 따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지각 변동을 주시해야 한다. 이런 숙제를 풀어갈 대한민국의 스마트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반도의 좁은 울타리에서 벌어지는 여야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 세계와 함께 지구촌 난제를 풀어가야 한다. 우리의 문제가 세계의 난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는 글로벌 위기의 파도를 헤치고 나가야 할 대한민국호에 함께 타고 있다. 만약 여야가 고질병 같은 대립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광복 100년이 되는 2045년쯤 대한민국은 스마트파워로서 글로벌 리더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좁은 국익에만 집착하는 패권 국가 혹은 노쇠한 국가들과는 달리 첨단기술과 세계적 콘텐트를 가지고 지구 전반의 난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시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스마트 파워가 될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과제가 막중하다. 글로벌 변화를 외면하고 정파적 이익만을 따지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서 세계시민의 입장에서 세계와 함께 글로벌 난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세계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물론 실천은 어렵다. 같은 의견과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정치적 편향을 증폭시킬 것이 아니라, 학계·언론·시민사회와의 다양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국제 감각을 갖추고 글로벌 혁신과 문화를 선도하는 우리 청년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올해 출범하는 새 정부부터 ‘청년 메가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면 한다.

현재 대한민국 청년은 일자리·교육·주택·출산·육아·병역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 양극화 확대, 저출산, 지역 소멸 등 우리 사회의 많은 난제도 함께 풀린다. 청년은 첨단기술에 익숙하고 수평적 조직을 원하지만, 우리 사회의 제도와 관행은 아직 청년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도 경직된 이념이나 포퓰리즘에 포획되어 미래에 소홀하면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청년에 두고 우리 청년이 세계의 혁신과 문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하자.

대학 자유 없으면 문화도 없어

청년 메가 프로젝트는 포괄적 개념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도입부터 정부와 경제·사회의 구조적·조직적 개혁까지 아우르는 획기적 도전·혁신·전환을 통하여 수년에 걸쳐 수천만 청년에게 혜택을 주는 대규모 융합적 국가사업이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하드웨어 투자 중심이 돼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정부는 민간과 청년이 주도하는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과감한 제도·정책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청년 메가 프로젝트를 디자인할 때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일자리·주택·교육·저출산 등 청년 문제를 해결할 때 중앙정부가 주도하던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지방정부·민간·대학으로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청년에게 힘이 실린다는 점이다.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세계 유수의 대학은 빠르게 신기술을 창출하거나 받아들여서 다양한 산업과 사회 분야에 접목하며 새로운 비즈니스와 사회 혁신의 모델과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지역 혁신생태계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대학이 이렇게 변화하여야 청년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가 혹은 창업가로서 신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지역경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102세 국가 원로, 대한민국 100년을 말한다’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는 “대학의 자유가 없는 나라는 문화의 자유도 없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 대학 교육정책이 뭐가 있는가 보면 없습니다. 통제만 하고요, 억제만 하고요. 교육부가 우리가 대학을 키우겠다는 건데요. 세계에 대학을 교육부가 키우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이 없고 자유가 없으면 그 민족과 그 사회의 문화는 자유가 없습니다. (중략) 하버드 대학이 미국에 해준 공헌이 어느 대통령의 공헌하고도 비교도 안 됩니다.”

출산·육아기 과감한 소득 보장 필요

교육부가 대학을 산하기관처럼 취급하는 관행은 그간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사실 글로벌 기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대학 개혁의 출발점은 대학을 교육부 산하에서 떼어내어 총리실로 편재하여 대학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대학 지원 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 진흥 기능을 지방에 대폭 이양한 후 영국의 기업혁신기술부(BIS)와 유사한 혁신전략부(가칭)를 신설하는 정부 개혁을 단행하자. 혁신전략부는 대학이 신산업과 사회 혁신을 위하여 핵심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자. 이런 과감한 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어야만 비로소 대학이 청년 일자리와 지역 산업 발전의 허브가 될 수 있다.

또 청년의 의무 군 복무 기간을 1년으로 줄이면서 동시에 부족한 병력은 전문 병사(모병)로 보강하는 국방 개혁도 실천하자. 그리고 ‘전 국민 부모 급여’를 도입하여 육아 휴직 기간 월 200만원까지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하다. 남성에게도 한 달간의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등 출산·육아기 과감한 소득 및 휴가 보장을 청년 메가 프로젝트에 포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