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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상 초유의 2월 추경, ‘대선용 돈풀기’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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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도별 1차 추경 처리 날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도별 1차 추경 처리 날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선거 앞두고 여당 추진, 야당 호응  

추경 요건에 맞는지부터 검토해야

나라의 모든 문제를 오로지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강박증이 ‘재정 중독(fiscal alcoholism)’이다. 술이나 마약처럼 재정 중독에도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4차, 2021년 1~2차 등 지난 2년간 여섯 차례나 추경을 편성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14조3000억원을 나눠준 2020년 2차 추경과 지난해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통과된 1차 추경 등은 ‘선심성 퍼주기’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올해 예산안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또다시 추경이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고 국민의힘도 호응하며 2월 추경 처리가 힘을 받는 모양새다.

습관성 추경 의존증은 진보·보수를 떠나 역대 정부의 오랜 관습이긴 하다. 추경 편성이 없는 해가 드물 정도로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 정도가 더 심해졌을 뿐이다. 정치권이 ‘신년 추경’을 밀어붙이기 전에 반드시 고민해야 할 대목은 여럿이다.

첫째, 3월 대선을 목전에 둔 사상 초유의 2월 추경이라는 점에서 ‘선거용 돈 풀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둘째, 추경 편성이 너무 잦고 시기도 이르다. 이러려면 1년 단위의 예산 편성은 대체 왜 하는가. 2월 추경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국회 논의를 거쳐 통과된 본예산을 바꿔야 할 만한 심각한 상황 변화가 과연 있는가. 추경은 본예산이 확정된 후에 생긴 사유로 인해 추가로 돈 쓸 곳이 생길 때 해야 한다. 정치권에선 코로나 재확산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2년 전 코로나19 발생 이후 계속된 일이다. 정부가 올해 본예산을 잘못 짰거나, 아니면 정치권의 추경 요구가 지나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셋째, 예산이 확정된 후 새롭게 돈 쓸 곳이 생겼다고 반드시 추경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예비비를 활용하거나 이미 정해진 예산의 전용(轉用)·이용(移用) 등으로 보완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는 정치권의 추경 요구에 일단 선을 긋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비해  최근의 소비 충격이 크지 않은 만큼 기존 예산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믿음이 안 간다. 문 정부 들어 여당의 요구에 ‘바람 앞에 누운 풀’처럼 납작 엎드린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돈 필요하다는 곳마다 예산을 뿌릴 수는 없다. 과거 예산 관료들은 욕을 먹더라도 결기 있게 원칙을 지켰다. 예산통으로 꼽혔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예산 편성을 두고 ‘불만의 공평 분배’라는 말을 즐겨 썼다. 모자라는 재원을 쪼개 쓰다 보면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예전의 기백을 잃어버린 기획재정부가 정치권 요구를 버텨내며 ‘재정 중독’을 막을 수 있을지 벌써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