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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월급 대신 일기장 정리…MZ의 '연말정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MZ세대의 '기록 연말정산'을 돕는 책에는 독자가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이 있고, 직접 여백을 채우는 식이다. 독자 제공

MZ세대의 '기록 연말정산'을 돕는 책에는 독자가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이 있고, 직접 여백을 채우는 식이다. 독자 제공

새해를 이틀 앞둔 30일 대학원생 차모(25)씨는 단골 카페에서 일기장과 노트북 등을 펴고 지난 1년 동안 쓴 일기와 블로그 글 등을 정리한다. 한 해의 기록을 정리하는 자신만의 연례행사, 올해로 네 번째 맞는 ‘기록 연말정산’이다. 직장인들이 연말연시에 덜 혹은 더 낸 세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연말정산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씨는 “1년 동안 있었던 사건과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꼬박 3~4일이 걸린다. 나 자신과 대화하고 새해를 맞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급여명세서 대신 일기장…MZ 놀이 문화로

차씨처럼 한 해 기록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이른바 ‘기록 연말정산’이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이다. 지인들과 함께 1년간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소회를 나누는 일이 이들 사이에선 ‘연말정산’으로 통한다.

직장인 안모(25)씨는 지난해 친구들과 화상으로 비대면 연말정산을 했다. 다 같이 연말정산 일기장을 사서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서로 묻고 대답했다고 한다. 안씨는 “친구들과 연말 소감을 나누는 이유는 까먹고 지나갈 뻔한 그해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되새기는 의미”라고 했다.

'기록 연말정산'이 유행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게 해주는 독립출판물도 인기를 끌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캡처

'기록 연말정산'이 유행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게 해주는 독립출판물도 인기를 끌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캡처

이러한 MZ세대의 문화에 발맞춰 ‘연말정산’이라는 제목을 단 독립출판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책에 ‘올해 OO에 과몰입했다’ ‘미루고 미뤄왔던 OO를 시작했다’ 등 여백이 있는 질문 100개가 있고, 구매자가 직접 답을 채워 넣는 식이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선 이러한 책이 모금 시작 10분 만에 목표치를 달성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직장인 백수정(30)씨는 “대학생 때 연말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가벼운 얘기만 나눴던 게 아쉬웠다. 자연스럽게 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2030 대학생과 직장인 구매자가 70% 정도고, 부모님께 선물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소셜미디어도 관련 서비스 앞다퉈 내놓아  

MZ세대가 온라인 환경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연말 소회를 소셜미디어에서 밝히는 이도 적지 않다.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른바 ‘랜선 롤링페이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용자가 ‘올 한 해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면 지인들에게 메시지로 답을 받는 방식이다. 대학생 장모(21)씨는 “10명 넘는 지인들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첫인상이나 속마음 등 평소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동영상 기반 플랫폼 '틱톡'에서는 '#굿바이2021' 챌린지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틱톡 캡처

동영상 기반 플랫폼 '틱톡'에서는 '#굿바이2021' 챌린지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틱톡 캡처

각종 소셜미디어도 이용자의 한 해 게시물을 분석하고 요약해주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2021 마이 블로그 리포트’로 이용자가 1년 동안 올린 게시물을 분석해 인기 글과 유입 키워드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0대 이용자가 많은 동영상 기반 플랫폼 ‘틱톡’에서는 이용자가 올린 동영상을 월별로 이어 붙인 ‘#굿바이2021’ 챌린지가 1200만회 넘게 재생되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고 자아 표출 욕구가 강한 MZ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김찬석 청주대 미디어콘텐츠학부 교수는 “기록하려면 펜과 수첩이 있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글과 사진, 영상을 기록하는 게 용이해졌다. 자존감이 높은 MZ세대가 각자의 개성에 따라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런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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