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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실적템 노하우?…"셀러 한명만 정해서 사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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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버킨백. [사진 에르메스]

에르메스 버킨백. [사진 에르메스]

"에르메스 버킨백 가격이 궁금해요."
"실적 고객이 아니면 매장가격이 별 의미 없어요. 가방은 '실적템'이에요. 가방이나 지갑을 빼고 의류·악세사리·신발·그릇 등으로 3000~4000만원 이상 채운 뒤, 원하는 색상·사이즈 기다려야해요." 

연말을 맞아 최근 온라인에선 이 같은 '실적템'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 일부 명품브랜드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실적이 없으면 인기제품의 '얼굴'조차 마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품업계가 최근 2년간 '역대급' 가격 인상을 했지만, 소비자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29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 등은 기존 구매실적이 있어야 인기제품의 구매기회를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품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공급량을 조정하고, 그마저도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만 판매하려는 일종의 '길들이기' 전략으로 보고 있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켈리백 등을 구매하기 위해선 이른바 '실적템'이라 불리는 다이어리·담요·그릇 등을 4000만원~1억원가량 구매해야 한다. 이 실적이 없으면 인기 가방을 구경할 기회조차 얻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연말엔 실적 쌓기 열풍이 더 세진다. 에르메스는 보통 1월에 제품가를 인상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에르메스 매장에 방문했다는 30대 여성 A씨는 "점원이 실적이 없으면 가방을 보여주기 어렵다고 했다"며 "입구컷 당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주인이 왕"…'인기백' 구경, 직원 환심사기 경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에선 '실적템' 구매 노하우까지도 나돌고 있다. "셀러 한명만 정해서 많이 사세요" "여러 번 만나서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세요" "지방에서 왔다고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해보세요" 등의 내용이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켈리백은 세부 사양에 따라 판매가가 2000만원~1억원가량이다. 소비자들은 이 '비싼 가방'을 사기 위해, 필요 없는 제품을 사거나 직원들의 환심을 사는 등 몸 낮추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이 돌아가다 보니 '손님이 왕'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 돼 버린 셈이다.

이 같은 배경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소비자들의 명품브랜드 '보복 소비'도 한몫하고 있다. 매장문이 열리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가는 이른바 '오픈런'도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서울 강남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명품관 입장을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유진 기자

서울 강남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명품관 입장을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유진 기자

2년간 '역대급' 가격 인상…비쌀수록 인기도 UP 

명품업계는 지난해부터 2년간 '역대급' 가격인상을 단행했지만, 소비자들의 사랑은 계속됐다. 샤넬은 이례적으로 올해 네 차례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 2월 일부 품목을 2~5% 올린 데 이어, 7월에는 클래식백·보이백·19백 등 스테디셀러 라인의 가격을 12% 인상했다. 샤넬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클래식 플랩 미디엄백'은 올 초 864만원에서 지난달 1124만원까지 올랐다.

루이뷔통도 지난 10월 일부 핸드백 가격을 최대 33% 올리는 등 올들어 5차례나 가격을 인상했다. 디올도 3차례, 프라다도 5차례 올랐다. 럭셔리 시계브랜드로 마찬가지다. 오메가는 '씨마스터 다이버 300'의 가격을 기존 670만원에서 이달 초 700만원으로 인상했다. '예물시계'로 유명한 피아제도 지난달 중순 판매가를 3~5%가량 올려 올해 두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의 원인으로 원부자잿값 및 인건비 상승, 환율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가격 인상이 잦아 모든 걸 설명하긴 역부족이다. 소비자들이 '오픈런' 등 무리한 방법으로 인기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명품업계의 가격 인상에 힘입어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에 공급량이 달려 원하는 핸드백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다 보니, 리셀러(재판매)를 통해 웃돈을 줘야만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경우 리셀샵을 통해 구매할 경우 옵션에 따라 500~2000만원가량의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한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는 1000만원가량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지난해 매출은 비슷하지만…영업이익은 쑥

지난해 명품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뛰지는 않았지만, 폭발적 인기를 바탕으로 영업이익은 소폭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샤넬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3% 감소한 9295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34% 증가한 1491억원을 기록했다. 총매출 감소는 코로나19 여파로 면세점 매출이 줄어든 탓으로 보인다. 에르메스코리아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소폭 늘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6% 늘어난 4191억원, 영업이익은 16% 늘어난 1334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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