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인동에는 ‘찜갈비 골목’이 형성돼 있다. 찜갈비라는 음식이 처음 등장한 건 1960년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식당이 아니라 동인동 가정집에서 요리해 먹은 게 출발점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018년 2월 대구시청 인근의 한 골목식당. 2·28 민주운동 기념식 참석차 대구에 온 문재인 대통령이 식사 후 “매우 맛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칭찬한 음식은 대구의 대표적인 밥도둑인 ‘찜갈비’. 갈비찜과 ‘찜’이라는 단어 위치만 다르지만, 맛은 천지 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찜갈비는 갈비찜처럼 밤이나 대추·무 대신, 양재기로 불리는 낡은 냄비에 고춧가루·마늘 등을 섞은 매콤한 양념이 대가 붙은 소갈비를 뒤덮고 있다. ‘맵고 얼얼한 시뻘건 맛’으로, 양재기에 젓가락을 계속 가게 한다.
대구 동인동에는 ‘찜갈비 골목’이 형성돼 있다. 저마다 찜갈비의 ‘원조’를 주장하는 찜갈비 식당 10여곳이 모여 있다. 찜갈비라는 음식이 처음 등장한 건 1960년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식당이 아니라 동인동 가정집에서 요리해 먹은 게 출발점이다.
식당 태동에 대해선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1960년대 초 군인이던 박 전 대통령은 동인동 한 가정집에서 찜갈비를 맛봤다. 매운맛에 매료된 그는 “이 맛이면 내다 팔아도 되겠다”고 했고, 이후 식당이 하나둘 생겨났다고 한다.
도끼로 고기를 자르는 한 사업가 얘기도 나온다. 1960년대 택시와 버스 사업을 하던 이 사업가는 복날이면 소갈비를 사 들고 집에 와서 도끼로 자르곤 했다. 가마솥에 익힌 소갈비에 마늘과 고추를 넣어 비벼 먹기 위해서였다. 사업가의 갈비를 맛본 지인들이 “식당을 차리면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식당이 하나둘 등장했다는 것이다.
동인동에 살던 박씨 부부 얘기도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술 한잔하며 밥을 먹을 테니 마늘 넣어서 소고기 요리를 해달라”고 했다. 연탄불에 양은냄비를 올린 부인은 갈비에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음식을 끓여 냈다. 이 음식을 이웃들이 맛보면서 찜갈비 식당이 동네에 생겨났다고 한다.
찜갈비는 매운 양념이 무기다. 그래서 ‘양념 사냥꾼’들이 골목에 자주 등장한다. 씨름선수 A씨에 대한 일화도 그중 하나다. 80년대 대구 찜갈비를 맛본 그는 3년여를 찜갈비 양념 배우기에 노력했지만 배워가지 못했다고 한다. 유명 호텔 식당 주방장도 ‘양념 정보 사냥’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찜갈비는 “얼핏 보기엔 먹음직스럽진 못하다”는 핀잔도 듣는다. 낡은 냄비, 즉 양재기에 고기를 그냥 ‘툭’하고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지 못할 일도 많다. 몇 년 전 유명 대기업 임원 10여명이 찜갈비 골목 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찜갈비가 나오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한다. 찌그러진 양재기를 보고서다. 한 임원은 “X밥그릇도 아니고”라고 정색을 했다. 그러나 고기 한 점을 먹고선 “뚝배기보단 장맛이네”라고 칭찬을 했단다.
문화해설사인 백혜영(63)씨는 “2011년 대구시에서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자“며 찜갈비 골목에 스테인리스 냄비를 나눠줬다. 그렇지만 ‘본연의 맛’ 문제로 찌그러진 양재기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최근 중앙일보 취재진은 1972년 개업한 찜갈비 골목 ‘봉산찜갈비’를 찾아 이순남(79) 창업주를 만났다. 그에게 맛의 비밀을 묻자 “마늘인데….”라고 귀띔했다. 마늘이 얼마나 들어갔나 봤더니 찜갈비 1인분에 20여쪽은 들어가 있어 보였다.
주방에 들어가니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요리하는 것을 엿보니 갈비를 간장에 조려 쪄뒀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고춧가루와 마늘, 후추 등을 넣고 10여분간 다시 쪘다. 찌는 음식이니 ‘찜’갈비라는 이름이 생긴 듯했다. 불에 계속 올려 끓이다 보니 낡은 양재기가 생겨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