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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랑이 최후 1년…인간과 다르지 않더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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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야생 시베리아호랑이를 기록하며 교감을 담은 책 ‘꼬리’를 출간한 박수용 작가. 장진영 기자

야생 시베리아호랑이를 기록하며 교감을 담은 책 ‘꼬리’를 출간한 박수용 작가. 장진영 기자

“표범, 시라소니, 다른 동물도 많이 촬영해봤지만 호랑이는 달라요. 귀한데다 숲에서 만나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있죠. 처음엔 그 느낌이 한국에 와도 그리워질 만큼 마약처럼 당겼어요. 그런데 자꾸 찍다 보니 호랑이의 애환이 보이더군요.”

27년간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해온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 박수용(57) 작가의 말이다. 멸종 위기 시베리아호랑이의 3대에 걸친 생존 투쟁을 기록한 첫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2011)에 이어 10년 만에 두 번째 자연 논픽션 『꼬리』(김영사)를 펴낸 그를 27일 인터뷰했다. 내년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를 앞두고다.

EBS PD 시절 자연 다큐를 고집해온 그다. 1995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야생 시베리아호랑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한해 절반 이상을 영하 30도 동토에 머물며 호랑이만 쫓아다녔다. 호랑이를 수대에 걸쳐 관찰·연구하며 촬영한 영상만 1500시간여. 그렇게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 7부작(1997), ‘시베리아호랑이-3代의 죽음’(2003) 등 다큐를 만들었고, 방송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낸 첫 책은 해외에도 영문판이 소개돼 “자연문학의 고전이 되어 마땅하다”(타임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침팬지 박사’ 제인 구달도 “호랑이에 관한 황홀한 산문”이라고 서평을 남겼다.

이번 작품은 늙은 수호랑이 ‘꼬리’의 마지막 1년간의 삶을 그렸다. 한때 일대 숲의 왕이었던 꼬리는 젊은 수호랑이로 인해 터전에서 밀려난다. 거들떠도 안 봤던 민가의 개까지 잡아먹는다. ‘야생호랑이가 늙어서 일인자의 자리를 내준다는 것은 (중략) 냉혹한 생존 투쟁의 정상에서 바닥으로 곧바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 치밀한 관찰이 뒷받침된 단단한 문장이 읽는 이의 마음을, 머나먼 설원(雪原)의 호랑이에게로 빙의시킨다.

박 작가는 “인간이든, 호랑이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 똑같다는 확신이 든다. 지능과 생활방식의 차이만 있지 태어나서 고민하다 죽는 건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미 10년 전 최후를 맞은 꼬리의 이야기를 이제야 펴낸 이유에 대해 그는 “지난 10년간 다큐를 떠나 책도 쓰고 나이도 들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더라”면서 “진짜 겪은 일로만 쓰되 내 마음을 심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박 작가는 야생과의 ‘우정’을 “모르는 척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거리감에서 찾았다. 있는 그대로의 야생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면서다. 2010년 EBS에서 퇴사한 그는 2011년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퇴직금 등을 털어 러시아 현지 동물학자와 손잡고 시베리아호랑이보호협회를 설립했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제인 구달 침팬지 연구소 등의 후원과 해외 방송사에 의뢰받은 다큐 보수 등을 보태, 밀렵 퇴치와 올가미 철거 등 시베리아호랑이 보호 활동을 해왔다.

『꼬리』 영문판도 내년 출간할 예정이다. 야생동물 보호기금들이 호랑이를 연구한다면서 올가미를 사용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호랑이가 올가미에 걸리면 10분만 지체되도 호랑이는 자기 발목을 끊어버리고 가요. 다치면 사냥을 못 하죠. 70마리가 올가미에 걸리면 50마리가 죽어요. 종과 개체를 동시에 보호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게 3편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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