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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통령 후보라면 연금개혁 방안 내놓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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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상호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김상호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의 공약에 대한 상호 비판이 가열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는 공적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유력 후보들이 언급조차 않고 있다.

아마도 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보험료 인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혁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런 태도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공적연금 개혁에 힘을 모으기로 한 것과 비교된다.

일본·독일, 현실상황에 맞게 손질
미래 세대에 부담 넘기지 말아야

국민연금 금액은 2021년 기준 40년 가입 시 평균소득의 43.5%다. 반면 보험료율은 9%로 턱없이 낮다. 이런 상태에서 기대여명은 빠르게 증가한다. 이에 따라 평균소득 수준의 신규 가입자가 1000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하면 2270만원의 연금을 기대할 수 있다.

고소득자도 납부한 보험료보다 1.8배 많은 연금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현행 제도에서는 모든 가입자에게 큰 순이익이 발생한다. 얼핏 보기엔 좋은 일 같지만 이에 따른 손실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미래세대가 세금이나 국민연금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

일본은 5년마다 공적 연금 재정 재계산을 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제도를 개선했다. 또한 최고 보험료율로 18.3%를 설정하고,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향후 100년의 재정 안정을 확보했다. 이를 벤치마킹해 한국도 국민연금에 재정 재계산 제도를 도입했다. 2차 재정 재계산 결과를 반영해 2007년 노무현 정부는 40년 가입 기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단계적으로 40%로 낮추는 개혁을 단행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발표된 4차 재정 재계산 결과에 기초한 국민연금 제도 발전위원회의 개편안을 거부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그 이후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실종됐다.

공적연금 개혁은 대선 후보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국가 운영에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국민연금 1차 개혁을, 노무현 정부는 2차 개혁을 주도해서 성공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이어서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공무원의 강한 반발에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관철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공적연금 개혁은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공적연금 개혁을 하지 않은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다.

문 대통령에게 국민연금 개혁 의지조차 있었는지 의심받고 있다. 문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방치로 국민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매일 약 81억원, 5년간 최소 15조원 증가한다는 추계는 국민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일은 ‘연금법 개혁 2001’을 통해 보험료율이 2030년까지 22%를 넘지 않도록 상한을 설정했다. 지속적인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가입자의 우려를 불식했다. 2004년 당시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 정부는 연금의 탈정치화를 위해 인구 구조와 노동 시장의 변화를 반영해 연금액을 조정하는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했다. 일본도 2004년 자동 조정 장치와 보험료율 상한제(18.3%)를 도입해 연금의 탈정치화에 성공했다.

최근 통계청 발표는 저출산·고령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돼 복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것임을 보여줬다. 젊은 세대는 취업난과 주택난으로 좌절하고 이는 결혼과 출산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임 있는 차기 대통령 후보라면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지 말고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국가 미래를 위해 국민연금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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