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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여성·고령자 활용 없인 경제 활력 되찾기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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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저출산·고령화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지난 9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총인구는 5175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9만 명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2019년 장래인구추계와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총인구 감소 시점이 8년이나 앞당겨졌다.

필자는 2002년 통계청장으로 부임해, 어린 시절 그토록 성대하게 치르던 환갑잔치가 사라진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원인을 찾다가 1960년 52.4세이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2001년 76.5세로 늘어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균 70세 이상 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60세 환갑잔치는 말할 것도 없고 70세 고희 잔치마저 성대하게 치를 명분을 잃게 된 셈이다. 출산율은 1960년 6.1명에서 2001년 1.3명으로 낮아졌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러다 보면 전체 인구 가운데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하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도래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는 지난해보다 9만 명 감소한 5175만 명 될 듯
인구 감소는 경제 활력 낮추고 연금·의료비 등 재정 부담 높여
획일적 정년 연장보다, 경륜 있는 고령자 활용 방안 마련하고
남성보다 낮은 여성 경제 활동 참여 높여 인력 부족 보완해야

4년 뒤 초고령사회 진입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7%를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고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후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전망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데 100년 넘게 걸린 선진국도 있지만, 가장 빠른 속도의 일본은 35년 만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10년이나 더 빨리 25년 만에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구 변화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역사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인 데 비해 식량 생산의 증가는 산술급수적이므로 인구가 늘어나면 빈곤이 깊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주장을 폈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1950년대에 인구가 많을수록 혁신 가능성도 커지므로 경제 성장이 촉진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입장은 어떤가? 산업혁명 이후 맬서스가 예상하지 못한 생산성 향상 덕분에 지난 50년간 세계 인구는 2배 증가한 데 비해 1인당 생산은 3배 증가한 사실에 주목한다. 인구를 구매력(수요)과 생산(공급)을 견인하는 경제의 힘으로 보는 것이다.

저출산과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인구 고령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인구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인구 감소와 인구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출산율이 낮아져도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만큼 당분간 인구 감소는 지연되지만 결국은 시간문제다. 통계청은 드디어 우리나라도 2021년에 인구 감소 현상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노인 상대적 빈곤율 OECD 1위

저출산 여파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었고 장차 경제의 주축이 될 유소년 인구도 감소한 데 비해 고령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년 후에는 인구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고령 인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거기에 노인 빈곤마저 심각하다. 중위소득의 50%로 생활하는 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상대적 빈곤율’은 2018년 43.4%로, 고령 인구 2명 가운데 거의 1명꼴로 빈곤에 처해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4.8%의 3배 가까운 수준으로 압도적 1위다.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드는데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 나라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연금과 의료비 지출 등 재정 부담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 부담이 늘어난다면, 나라의 재정이 과연 지탱할 수 있을까?

이런 여건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 우선 출산율 제고를 통해 경제활동인구를 늘려가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출산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인 만큼 그동안 많은 재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 장려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보다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아이 양육 비용을 개인이 아닌 공적 부담으로 돌려 부모의 양육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록 숫자는 줄었을지라도 태어난 아이가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교육하는 일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되찾기 위해 과거의 지덕체(智德體) 교육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남녀 경제활동참가율 73% vs 54%

출산율을 회복한다 해도 신생아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기까지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OECD가 권고하는 ‘활동하는 노년(active ageing)’ 개념에 주목하여 고령자의 경제 활동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 고령 인구가 일할 기회를 늘림으로써 소득을 높여 지갑을 열게 하고 재정에서의 복지 지출 부담도 줄이는 방안이다. 고령화와 관련한 다양한 비관적 예측의 논거는 고령 인구를 경제적 소비자로 간주하여 부양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데 있다. 이제는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고령자에게는 일정한 역할과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생산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고령자가 도움이 아니라 걸림돌이 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획일적인 정년 연장이 아니라 경륜을 갖춘 고령자를 선별해서 활용토록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우리의 여성 인력을 좀 더 활발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10월 우리나라의 경제 활동 참가율 63.2%를 성별로 살펴보면 남자는 72.8%, 여자는 53.8%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10% 포인트만 올려도 전체 경제 활동 참가율을 5%포인트 올릴 수 있다. 여성 인력이야말로 고령화에 따른 인력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더는 방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대책이 있었지만 제대로 효과를 본 정책은 거의 없다. 이제야말로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입시 매몰 교육 벗어나 지덕체 교육 되살려야

우리나라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년) 시행으로 개발 연대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반세기 만에 하루 세끼 밥 먹는 문제를 걱정하던 최빈국에서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1인당 국민소득 증가 추이를 보면 1961년 82달러, 1973년 407달러(하루 1달러 빈곤선 돌파), 1994년 1만 달러, 2006년 2만 달러, 2017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뒤안길에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2003년 이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2011년 1만590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31.7명까지 치솟았다.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2020년에도 25.7명으로 여전히 높다. 이는 매일 40명 가까운 사람이 자살로 사망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경제발전이었는지를 묻게 된다.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분열이 심하다는 점 또한 대단히 안타까운 현상이다.

빠른 경제발전의 요인을 둘러싸고 여러 견해가 있지만, 교육의 뒷받침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 변질된 교육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지식을 얻고, 집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으로 덕을 배우며, 방과 후에는 밖에서 뛰어놀며 체력을 길렀다. 지덕체 교육이다. 그런데 요즘 교육은 어떤가? 대학입시 준비 이외의 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다. 학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대학입시 준비에만 신경 쓰라고 주문한다. 방과 후에도 학원에 가서 지식을 보충하느라 바쁘고 밖에 나가 봐야 함께 놀 친구도 찾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지덕체가 아닌 지지지 교육이 되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효·우애·우정·배려 같은 소중한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크면 가족·친구·남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어른이 될 게 뻔하다.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자살률을 줄이며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지덕체 교육을 되살려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