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용자 72% 신용등급 하락…빚 부르는 온라인 외상 'BNPL'

중앙일보

입력

미국 BNPL업체 어펌의 홈페이지 모습.[어펌 홈페이지 캡처]

미국 BNPL업체 어펌의 홈페이지 모습.[어펌 홈페이지 캡처]

미국 BNPL업체 클라르나의 홈페이지 모습.[클라르나 홈페이지 캡처]

미국 BNPL업체 클라르나의 홈페이지 모습.[클라르나 홈페이지 캡처]

당장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는 ‘선구매후지불(BNPLㆍBuy Now Pay Later)’ 서비스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저신용자를 중심으로 이용이 급증하면서 BNPL 서비스가 과소비와 연체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BNPL은 일종의 '무이자 분할 결제' 서비스다. BNPL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소비자를 대신해 가맹 판매점에 돈을 지불하면, 고객은 해당 금액을 무이자로 일정 기간 나눠 갚는 방식이다. BNPL 업체는 가맹점 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챙긴다. BNPL은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 등에서 돈을 한 번에 다 내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어 ‘온라인 외상’으로도 불린다.

얼핏 신용카드와 비슷하지만, 신용 등급과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고 수수료가 없는 ‘분할’ 결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로 인해 BNPL 업체들은 소득이 적어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대학생ㆍ사회초년생ㆍ주부ㆍ노인 등 이른바 ‘씬파일러’(Thin Filer)‘ 계층을 타깃으로 삼는다.

올해 ’온라인 외상‘ 1000억 달러  

BNPL은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씬파일러 계층인 젊은층을 중심으로 해당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쇼핑 수요까지 증가하면서다. 금융컨설팅 기업 코너스톤 어드바이저스에 따르면 올해 미국 소비자가 선구매후지불로 결제한 금액은 약 1000억 달러(약 119조원)로 추정한다. 지난해 240억달러(약 28조원)에서 네 배 가량 치솟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BNPL 시장 규모가 2025년까지 1조 달러(약 1186조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BNPL의 급격한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 서비스 이용자 가운데 빚을 못 갚는 고객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다.

야후파이낸스는 지난 21일 금융회사 크레디트 카르마의 조사를 인용해 “미국 BNPL 이용 고객의 34%는 최소 1건 이상의 결제를 연체했고 72%는 신용등급이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BNPL이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미 설문조사업체 어센트는 “BNPL 이용자 중 45%가 본인의 예산을 뛰어넘는 물건을 구매했다”고 전했다. 신용카드 한도가 초과해 사용했다는 응답자도 17%에 달했다.

미국 내 선구매 후지불(BNPL) 결제 금액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내 선구매 후지불(BNPL) 결제 금액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 규제당국, BNPL 첫 조사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도 BNPL 업체 조사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CFPB는 최근 어펌ㆍ애프터페이ㆍ클라르나 등 BNPL 업체에 거래동향, 수수료, 신용보고 등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로히트초프라 CFPB 국장은 “BNPL 업체는 소비자가 즉시 물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부채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규제 당국이 BNPL 서비스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BNPL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외국보다 신용카드 발급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신용카드를 통한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보편화 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빅테크 간편결제 서비스와 연동되며 성장할 가능성은 엿보인다. 최근 네이버ㆍ쿠팡 등 빅테크 기업이 잇따라  BNPL 도입에 나서고 있어서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4월부터 만 19세 이상이며 네이버페이 가입 기간이 1년 이상인 사용자 중 일부를 대상으로 월 최대 30만원 한도의 소액후불결제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쿠팡도 ‘나중결제’라는 서비스를 통해 BNPL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토스도 이르면 내년부터 BNPL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한국은 규제 샌드박스로 운영

빅테크 업체가 BNPL 사업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금융당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혁신금융서비스) 덕분이다. 현행법상 후불결제는 신용카드사 외에는 불가능한데, 금융당국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빅테크도 선구매후지불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거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후불결제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며 전자금융업자가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조건을 달았다”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의무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만들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BNPL의 부실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BNPL은 잘 활용되면 저신용자에는 금융을 지원하고, 카드사에는 외연을 확장할 수단이 될 것”이라며 “다만 대금 연체 등으로 부실이 생길 수 있어 이를 예방할 방안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