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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제거, 기후변화 막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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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호 16면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 ② 클라임웍스

클라임웍스 창업자 얀 부츠바허(왼쪽)와 크리스토프 게발드가 아이슬란드 ‘오르카(Orca)’ 공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클라임웍스]

클라임웍스 창업자 얀 부츠바허(왼쪽)와 크리스토프 게발드가 아이슬란드 ‘오르카(Orca)’ 공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클라임웍스]

지난해 서울 용산에서 측정한 이산화탄소(CO₂) 농도는 최고 448ppm이었다. 과학자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이 되면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온도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2000년대 초 스위스 취리히공대를 다니던 독일 국적의 크리스토프 게발드(Christoph Gebald)와 얀 부츠바허(Jan Wurzbacher)는 이 같은 기후변화를 경험한다. 대학에서 만난 이 둘은 알파인 스키를 즐기며 금세 친구가 됐는데, 이산화탄소로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스위스의 빙하가 점점 녹아 없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필터에 흡착된 CO₂ 분리, 광물로 만들어

지구 온도 상승과 같은 인류가 현재 겪고 있는 기후변화의 주 원인은 공장 가동 등 산업 활동에서 배출하고 공기 중에 축적되는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매년 330억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공기 중에 누적된다. 그래서 국제사회와 산업계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은 간접적인, 예컨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공정을 개선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추고, 이미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는 쉽지 않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선 당장 공장을 멈춰 세워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의 일상도 멈추게 된다. 남은 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탄소직접포집(DAC, Direct Air Capture) 기술이라고 한다.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국가나 기업들은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클라임웍스(Climeworks) 연혁

클라임웍스(Climeworks) 연혁

사실 DAC 기술 자체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없애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없애자고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식이다 보니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와 얀은 DAC 기술 상용화에 매달렸다.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없다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없애면 된다는 생각에 DAC 기술 개발에 몰두한 것이다. 2009년 이 둘은 DAC 기술 개발을 위해 스타트업 클라임웍스(climeworks)를 세우고, 이산화탄소 포집·제거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둘의 의지는 이산화탄소 흡착 필터와 친환경 에너지로 귀결됐다. 크리스토프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을 위한 흡착제 연구로, 얀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기 위한 진공 순환식 공정 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는 클라임웍스의 바탕이 됐다. 이들이 고안한 방식은 대략 이렇다. 상온의 공기를 모듈형 흡입기가 빨아들여 이산화탄소 흡착 필터에 통과시키면, 필터가 이산화탄소만 흡착하는 것이다. 필터에 이산화탄소가 충분히 흡착되면 이를 가열해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내고, 이 이산화탄소를 전문업체의 기술을 활용해 지하에 주입한 뒤 광물로 만들어 땅속에 영구 보관한다. 이때 드는 에너지는 지열을 이용한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와 1000만 달러 계약

이들의 DAC 기술이 주목 받기 시작한 건 2011년, 대학 연구실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버진 어스 챌린지’에 제안하면서다. 이 챌린지는 영국 버진그룹과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가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상용 프로젝트를 찾기 위해 만든 것으로, 클라임웍스는 이 챌린지를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유럽혁신기술연구소(EIT)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지원을 받으며 상용화에 한 발 더 다가섰다.

2014년에는 모듈형 DAC 포집기를 개발하고, 세계 곳곳에 포집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을 받아 아이슬란드에 세계 최대 DAC 공장인 ‘오르카’(Orca)를 건설, 올해 9월 8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오르카에선 매년 4000t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고, 이를 전문업체와 협업해 땅속에 저장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환경 전문가들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흡수하는 ‘최초의 역배출 발전소’가 탄생했다”고 찬사를 보낸다.

클라임웍스의 기술이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기업들과의 탄소배출권(탄소제거권) 계약이 줄을 잇고 있다.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없는 기업들이 클라임웍스와 계약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 스위스리는 클라임웍스와 10년간 1000만 달러 규모의 탄소 제거 계약을 체결했고, 전자상거래 기업인 캐나다의 쇼피파이도 5000t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계약을 했다. 클라임웍스에 따르면 오르카 가동을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남짓 지났는데, 이미 12년 치 탄소제거권이 매진됐다.

이 같은 클라임웍스 성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인류가 풀어야 할 큰 문제를 발견하고 세상을 바꿀 방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그들은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정부와 학교 등 공공영역의 기술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두 명의 창업자들은 기술을 개발하고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 박사학위 과정을 함께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스타트업의 데스밸리(스타트업 죽음의 기간, 창업 후 약 3~7년)를 넘어 궤도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거대 자본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10년 후, 20년 후 클라임웍스의 꿈이 이루어져 더 이상 인류가 이산화탄소로 인한 기후변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미래가 다가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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