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전진단·상한제·재초환…재건축 문턱 여전히 높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68호 10면

[SPECIAL REPORT]
탄력받는 재개발·재건축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에 붙은 현수막. 5일 재건축 정밀안전진단에서 최종 탈락하자 주민들이 항의하기 위해 붙였다. [연합뉴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에 붙은 현수막. 5일 재건축 정밀안전진단에서 최종 탈락하자 주민들이 항의하기 위해 붙였다. [연합뉴스]

은퇴를 앞둔 회사원 김모(54)씨는 요즘 초조하다. 그가 80㎡형 한 채를 소유한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아파트의 재건축 문제 때문이다. 이 단지는 1988년 준공돼 법적인 재건축 연한(준공 후 최소 30년)을 채웠고, 재건축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요청해 올 4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으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재건축 불가(유지·보수)를 의미하는 A~C등급이 아니라는 점에서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재건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규제 문턱이 생각보다 높더라”며 “앞으로가 문제”라고 전했다. 김씨 말대로 1차 정밀안전진단은 안전진단 절차에서도 첫걸음에 불과하다.

D등급 땐 2차 정밀안전진단 받아야

여기서 D등급의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게 되면 이에 대한 적정성을 검토하는 단계인 2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한다. 2018년 3월 시행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규제로 추가된 절차인데 통과하기가 까다롭다. 안전진단 평가항목 가운데 건물의 내구성 등을 가리키는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법 개정 전 20%에서 50%로 대폭 강화한 때문이다. 판정을 맡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국토안전관리원 등 공공기관이 구조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면, 다른 주요 평가항목인 주거 환경(가중치 15%)이 극히 열악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건축의 적정성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새 규제 도입 후 1차 D등급으로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서울시내 단지는 4곳(서초구 방배삼호, 마포구 성산시영, 양천구 목동6단지, 도봉구 도봉삼환)뿐이다. 1차에서부터 즉각 재건축이 확정되는 E등급을 받았던 영등포구 여의도목화까지 합해도 5곳만 통과했다. 규제 도입 전 3년간(2015년 3월~2018년 3월) 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시내 단지가 총 56곳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올해 적정성 검토를 신청한 서울의 재건축 추진 단지 14곳 중 통과한 단지는 한 곳도 없다. 양천구 목동7단지 등 일부는 보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검토가 보류됐고,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와 노원구 태릉우성 등은 탈락했다.

관련기사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어렵게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통과하더라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재초환’으로 불리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8년 부활한 이 제도는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오른 집값으로 얻은 이익이 인근 집값 평균 상승분과 각종 비용 등을 빼고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규제다. 재건축의 이익을 적정하게 배분해서 공익을 위해 쓰는 한편 투기는 방지하자는 취지다. 2006년에 처음 시행됐다가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 위축 우려 등의 이유로 법 개정이 진행돼 2013~2017년엔 일시 중단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조합원당 초과이익이 3000만~5000만원인 경우 평균 부과액은 3000만원 초과액의 10%가 된다. 4000만원의 초과이익이 발생했다면 400만원을 환수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초과이익이 5000만~7000만원일 땐 200만원+5000만원 초과액의 20%, 7000만~9000만원일 땐 600만원+7000만원 초과액의 30%, 9000만~1억1000만원일 땐 1200만원+9000만원 초과액의 40%를 각각 환수한다. 이익이 1억1000만원을 초과하면 2000만원+1억1000만원 초과액의 50%라는 상당액을 환수한다. 초과이익이 2억원인 경우 그 32.5%인 65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강남 등 집값이 폭등한 지역에선 깜짝 놀랄 만한 재건축 부담금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엔 약 5966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부담 예정액이 통보됐다. 조합원 1인당 4억200만원을 내야 한다. 이에 대해 “많은 초과이익을 얻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과 “지나친 개인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 맞선다. 앞서 일각에선 재초환의 미(未)실현 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에 위헌 요소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 문제를 다룬 헌법재판소가 2019년 12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제도 자체의 폐지는 어려워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초환의 경우 전면 폐지는 어렵지만 제도를 정확히 점검하는 방안을 정부가 생각해볼 만하다”며 “초과이익 구간별 부담금 퍼센티지(%) 조정 등으로 시장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역시 재건축의 걸림돌로 꼽힌다. 민간택지인 재건축 단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도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분양가 상한제는 건설사가 공동주택의 분양가를 산정할 때 일정한 건축비에 택지비를 더하게 하고,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게 하는 제도다. 분양가 상한제 자체는 원래 1977년 도입됐던 역사 깊은 제도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규제 완화 필요성이 커지면서 사실상 사라졌는데 2005년 3월 부활했다. 당시 집값 급등으로 건설사들이 과도하게 이익을 남기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법을 개정했다.

“초과이익 구간별 부담률 조정 등 필요”

이후 2007년 9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됐다가 2015년 폐지됐다. 2013~2017년 재초환 일시 중단 때처럼 주택시장 침체 극복이 이유였다. 지금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2019년 법 개정으로 부활한 것이다. 기존 제도에선 적용 필수 요건을 직전 3개월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지역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이를 투기과열지구 지정 지역으로 바꿨다. 또 재건축 등 정비사업 아파트의 경우 입주자 모집 공고 시점부터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전매 제한 기간도 집값이 인근 시세의 100% 이상이면 5년, 80~100%면 8년, 80% 미만이면 10년으로 각각 정해 투기 수요가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걸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이런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단지가 늘고 있다. 강동구 둔촌주공이 대표적이다. 이 단지의 재건축 사업은 2003년 추진위원회 승인, 2006년 정비구역 지정, 2018년 주민 이주와 2019년 기존 아파트 철거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이후 주택도시보증공사 분양 보증 과정에서 분양가 책정을 놓고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인 현대건설 사업단(4개사)이 마찰을 빚으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올 초에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앞두고 일반 분양을 할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낮은 분양가에 조합원들이 반발하면서 분양 일정도 연기된 바 있다. 이후 다시 내년 초 일반 분양이 예상됐지만 현재로선 무기한 연기가 유력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