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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여의도 파크원의 빨간 기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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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저 빨간 기둥은 대체 뭔가요?”

63빌딩을 제치고 서울 여의도의 초고층 건물로 자리매김한 ‘파크원’이 완공되자 이런 질문이 쏟아졌다. 최고 높이 333m(69층), 직사각형 타워의 모서리마다 빨간 선이 강렬하게 뻗어 있는 탓이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의견부터 통일교가 소유했던 부지에 들어선 빌딩이라 “통일교 로고의 빨간색을 본 따 만들었다”라거나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돼 그 취향에 맞췄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다.

파크원은 지난 18일 작고한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88)의 작품이다.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으로 불린 그는 건물 속내를 뒤집어 보이게 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파리 퐁피두 센터는 원래 안에 있어야 할 철골과 배관, 에스컬레이터 등을 밖으로 꺼냈다. 기괴한 생김새에 ‘네스호의 괴물’에 비유되기도 했지만, 디자인의 이유는 있었다. 건물이 전시장으로써 잘 쓰이기 위해, 내부를 넓히기 위한 건축가의 구조적인 해법이었다.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여의도 파크원 빌딩. [연합뉴스]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여의도 파크원 빌딩. [연합뉴스]

파크원의 빨간 기둥도 원래 안에 있어야 할 기둥을 밖으로 꺼내 놓은 것이다. 건물 모서리마다 있는 이 기둥은 건물 하중과 횡력 등을 지탱하는 주요 구조체다. 우여곡절 많았던 이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설계를 맡았던 정광량 동양구조안전기술 대표는 “국내 최초로 메가 프레임 구조 기법을 적용한 건물”이라고 말했다.

프레임, 즉 외벽이 구조체다. 쭉 뻗은 빨간 기둥과 기둥 사이 커다란 삼각형 모양으로 빗대어 있는 ‘가새 골조’가 이 초고층 건물을 지지한다. 건물 내부에 기둥을 두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다른 초고층 건물과 달리, 센터원 내부에는 기둥이 거의 없는 데다가 1층과 꼭대기 층의 면적이 같으니 실내가 넓다. ‘더 현대’ 백화점 지붕 위에 있는 빨간 크레인도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 지붕을 들어 올리고 있는 구조체다. 백화점 꼭대기 층의 기둥 없이 뻥 뚫린 실내 정원은 이 크레인 덕에 가능했다.

그런데 왜 빨간색을 입혔을까. 우리나라 단청색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당시 영국 로저스 사무실에서 파크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위진복 건축가(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계획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색이고, 이유는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건물 구조를 밖으로 드러낼 때 더 잘 보여주기 위해 빨간색을 칠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빨간 기둥은 서울시 심의 과정에서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단청색이라는 국내용 설명이 더해졌다.

파크원의 빨간 기둥은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지만, 파격적인 실험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이런 실험 정신으로 도시 풍경을 새롭게 만들었던 건축가는 여의도 풍경도 그렇게 바꾸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