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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 결재 라인 2명이 숨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 숨진 채 발견된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공사) 개발사업1팀장(현 개발사업1처장)은 2013년 11월 공사 전문직 ‘가’급 도시계획 직렬로 입사했다. 당시 공채 합격자가 김 처장 1명뿐이라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공사 내 실세였던 유동규(52·구속기소) 전 기획본부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실제 유 전 본부장이 2000년대 말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단지 리모델링추진위원회 조합장으로 있을 때 김 처장은 리모델링 시공업체 직원으로 일하면서 호흡을 맞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난 유 전 본부장의 측근이 아니다”란 취지로 부인했다.

당초 대장동 개발 사업 주무부서는 개발사업2팀이었는데 2015년 2월 4일 성남시의회의 대장동 사업 출자 타당성 의결 직후 주무부서가 개발사업1팀으로 바뀌었다. 김 팀장이 대장동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 배경을 두곤 전·현직 공사 관계자들의 추측만 무성하다. 한 관계자는 “유동규가 자신의 측근에게 업무를 재배당한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이현철 개발2팀장이 유동규나 전략사업팀 직원들과 의견 충돌이 잦아 업무에서 배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팀장은 전략사업팀과 함께 민간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모지침서를 작성하는데 일부 관여하고 같은 해 3월엔 직접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심사도 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1일 성남도시개발공사 1층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스1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1일 성남도시개발공사 1층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스1

유동규 전 본부장과 공사 투자사업파트장이었던 정민용(47·불구속기소) 변호사,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56·구속기소)씨,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48·구속기소) 변호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53·불구속기소) 회계사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팀장은 2015년 3월 26일 정 변호사와 함께 공사 내부 심사위원으로 지정돼 성남의뜰·메리츠종합금융증권·산업은행 등 3개 컨소시엄에 대한 민간사업자 선정 심사에 참여했다. 이때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2차 상대평가에서 ‘프로젝트회사 설립 및 운영계획’ ‘자산관리 회사 설립 및 운영계획’ 항목과 관련해 메리츠·산업은행 컨소시엄이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 냈는데도 0점을 부여하는 등 편파적인 심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팀장의 이름은 2015년 5~6월의 공소사실에도 등장한다. 당시 성남의뜰 컨소시엄과 사업협약서 체결 협상은 개발사업1팀 김 팀장과 이모 파트장, 한모 책임실무관 등이 담당했다. 이들이 5월 22일 성남의뜰 컨소시엄 측으로부터 받은 사업협약서 초안엔 ‘공사가 확정으로 배당을 요구할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추가 배당이나 사업계획서 외 추가 비용 지출을 요구할 수 없다’ 등 추가이익 배분 제한 조항이 들어갔다. 김 팀장과 직원들은 5월 22~26일 논의 끝에 평당 택지 분양가격이 사업계획서 내 1400만원보다 상승하면 민간사업자 측이 수천억원대의 추가 개발이익을 독점할 것을 우려해 ‘추가이익을 출자 지분율에 따라 별도 배당하기로 한다’ 등의 조항으로 바꿨다.

개발사업1팀은 27일 오전 10시 35분 이 같은 내용의 사업협약서 수정안을 전략사업팀에 보고했다. 그러자 정 변호사는 같은 날 오후 2시 자신보다 상급자인 김 팀장 등을 불러 수정안 내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삭제해 다시 기안·회람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김 팀장으로부터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한 실무관은 오후 5시 51분 이를 전부 삭제한 재수정안을 기안했고, 전략사업팀은 오후 6시 8분 검토 결과를 회신했다.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은 지난 9일까지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에 여러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지만 피의자 전환 가능성은 없었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7일 오후 검찰에 출석한 김 처장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은 지난 9일까지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에 여러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지만 피의자 전환 가능성은 없었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7일 오후 검찰에 출석한 김 처장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같은 내용은 검찰이 판단한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의 핵심이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김 팀장의 경우 피고인들의 범죄사실 특정을 위해 업무 담당자로서 등장하는 것일 뿐 아직 범죄에 공모하거나 가담한 공범으로 본 건 아니다”라며 “지난 9일까지 특경법상 배임 혐의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고 추가 소환이나 피의자 전환 예정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팀장은 지난 10월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회사에서 정한 대로 했고, 부서장이나 성남의뜰 이사(※김 팀장은 성남의뜰의 공사 몫 사외이사를 맡았다)나 위에서 하라고 해서 했다”며 “지금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느낌이다.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고 토로했다.

배임 혐의의 핵심인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의 공식 결재라인은 한 실무관→김 팀장→유한기 전 본부장→유동규 전 본부장(사장 직무대리)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전략사업팀의 경우 유동규 전 본부장의 ‘별동대’로 기획본부장이나 사장에 직보했다. 이 중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한기 전 본부장에 이어 중간 관리자 2명이 모두 사망하면서 유동규 전 본부장 지시의 ‘윗선’을 겨냥한 수사는 더는 진척을 보기 힘들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도 핵심 피의자가 아닌 단순 참고인 사망에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안타깝고 착잡하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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