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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물가 뛰는데 저금리 고수…터키 리라화 폭락 “금융위기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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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 환전소에서 달러 등 외국돈을 사려 줄 선 시민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AF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 환전소에서 달러 등 외국돈을 사려 줄 선 시민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AFP=연합뉴스]

‘악마의 잼’으로 불리는 초콜릿 잼 ‘누텔라’를 사재기해야 할 판이다. 전 세계 헤이즐넛의 70%를 재배하는 터키의 외환위기 때문이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며 헤이즐넛 재배에 필요한 씨앗과 비료, 살충제 등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며 작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때아닌 누텔라 공급난은 ‘에르도안 나비효과’다. 물가 급등에도 저금리를 고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청개구리 통화 정책’이 빚어낸 부작용이다. 에르도안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금리를 낮춰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주창하고 있다.

금리를 내려 리라화 가치를 낮추면 수입 물가가 오르게 돼 수입이 줄고 반대로 수출품 가격이 낮아지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출이 늘어나 경제가 회복되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하고, 곧 고용 창출로 이어질 것이란 게 에르도안의 주장이다.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나들었지만 에르도안의 압박 속에 중앙은행인 터키은행은 지난 9월부터 넉 달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해 19%였던 기준금리를 14%로 내렸다. 금리 인하로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은 물가 오름세에 기름을 부었다.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은 지난 8월부터 3개월간 19%를 넘었다. 11월엔 20.7%를 기록했다.

시장에 돈이 쏟아지며 터키 화폐인 리라화 값은 자유낙하 중이다. 20일(현지시간) 터키 외환시장에서 리라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18.36리라까지 치솟으며 올해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 달러당 7리라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리라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했다.

에르도안의 청개구리 정책은 터키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반 토막 난 리라화 가치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외환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 터키은행은 리라화 폭락을 막기 위해 이달 들어서만 다섯 차례 시장에 개입했다. 이에 터키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났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무스타파 쇤메즈 터키 경제학자는 “현재 터키에선 금융위기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WSJ은 터키 경제학자와 전직 관료를 인용해 “에르도안의 막무가내식 통치가 경제난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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