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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에 금리 인하…'에르도안 나비효과'에 누텔라 사재기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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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넛 잼 누텔라의 모습. [사진 셔터스톡]

헤이즐넛 잼 누텔라의 모습. [사진 셔터스톡]

'악마의 잼'으로 불리는 초콜릿 잼 '누텔라'를 사재기해야 할 판이다. 전 세계 헤이즐넛의 70%를 재배하는 터키의 외환위기 때문이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며 헤이즐넛 재배에 필요한 씨앗과 비료, 살충제 등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며 작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탈리아 제과업체 페레로가 만드는 누텔라는 헤이즐넛 스프레드 제품으로, 페레로는 누텔라에 들어가는 헤이즐넛 수입량의 3분의 1을 터키 농가에 의존하고 있다. 기업 컨설턴트인 투르간 쥘 피가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 세계가 헤이즐넛 품귀 위기에 처했다”며 “누텔라 팬이라면 미리 챙겨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아닌 누텔라 공급난은 '에르도안 나비효과'다. 물가 급등에도 저금리를 고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청개구리 통화 정책'이 빚어낸 부작용이다. 에르도안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금리를 낮춰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주창하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리라화 가치가 낮아져 수입 물가가 올라 수입이 줄고, 반대로 수출품 가격이 낮아지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출이 늘어나 경제가 회복되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하고, 곧 고용 창출로 이어질 것이란 게 에르도안의 주장이다.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나들었지만 에르도안의 압박 속에 중앙은행인 터키은행은 지난 9월부터 넉 달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해 19%였던 기준금리를 14%로 내렸다. 금리 인하로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은 물가 오름세에 기름을 부었다.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은 지난 8월부터 3개월 19%를 넘었다. 11월엔 20.7%를 기록했다.

급락하는 터키 리라화 가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급락하는 터키 리라화 가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장에 돈이 쏟아지며 터키 화폐인 리라화 값은 자유 낙하 중이다. 20일(현지시간) 터키 외환시장에서 리라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18.36리라까지 치솟으며 올해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 달러당 7리라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리라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했다.

에르도안의 청개구리 정책은 터키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반 토막 난 리라화 가치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국민의 지갑은 얇아지고 있다. 몇 달 만에 같은 물건을 사려면 두 배 가까운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탓에 터키 국민은 리라 대신 금이나 달러로 자산을 바꾸고 있다.

외환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 터키은행은 리라화 폭락을 막기 위해 이달 들어서만 다섯 차례 시장에 개입했다. 이에 터키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났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무스타파 쇤메즈 터키 경제학자는 “현재 터키에선 금융위기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WSJ은 터키 경제학자와 전직 관료를 인용해 “에르도안의 막무가내식 통치가 경제난의 주범”이라며 “리라화 불안정이 헤이즐넛뿐 아니라 터키의 의류와 자동차 부품 수출업체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서 리라화 폭락 등을 야기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저금리 정책의 폐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2일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서 리라화 폭락 등을 야기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저금리 정책의 폐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르도안의 '저금리 도박'에 경제가 휘청대며 내부 반발도 거세다. 지난 18일 터키 최대 경제단체인 터키경제산업협회(TUSIAD)는 성명을 통해 자국 정부에 저금리 정책을 폐기하고 ‘경제학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수도 앙카라 등 터키 전역에선 수천 명의 시민이 대통령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야권에서는 경제 불안에 조기 총선 요구가 거세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마이웨이는 계속될 기세다. “저금리가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며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이 다른 정책을 펴는 관료는 경질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 반대해 온 뤼트피엘바 재무장관을 지난 2일 해임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9일 TV 연설에서 이슬람의 고리대금업 금지 계율을 언급하며 “무슬림으로서 종교적 법령이 요구하는 건 무엇이든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라화 가치를 보호할 새로운 금융 수단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금융 수단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은 회의적이다. 웰스파고의 브렌단 맥케나 환율전략가는 “정책 신뢰도 측면에선 터키 정부에 대한 믿음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블루베이애셋매니지먼트의 티모시 애쉬 이머징마켓 선임전략가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치는 막대한 불확실성과 정부의 재정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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