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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3점뿐인 합, 유럽 수출용 성경 독서대… 다 옻칠로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장 입구는 옻나무 군락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냈다. 김정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장 입구는 옻나무 군락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냈다. 김정연 기자

아시아 지역에서 자생하는 옻나무가 각국의 다양한 칠공예 예술품으로 발전한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21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칠, 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에서다.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진 천에 여러 그루의 옻나무가 비치고, 옻나무 껍질에서 수액을 채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시디자인을 담당한 박혜윤 전문경력관은 "옻나무 숲을 지나는 느낌으로 입장해, 전시장 초입에서 원 재료의 감각을 가지고 입장할 수 있도록 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전. 생나무로 목기를 깎은 뒤 옻칠을 겹겹이 해 색을 내는 과정을 나타냈다. 김정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전. 생나무로 목기를 깎은 뒤 옻칠을 겹겹이 해 색을 내는 과정을 나타냈다. 김정연 기자

‘옻칠’은 옻나무 수액을 나무, 천, 금속, 가죽 등에 발라 물건의 내구성을 높이는 마감 방법이다. 옻나무 껍질을 긁어 나오는 옻나무 수액은 반투명한 유백색인데, 산소와 만나 마르면서 옅은 검은색의 광택이 나는 투명한 막을 형성한다. 이 막이 물과 벌레 등을 막고 열에 의한 훼손과 부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그릇과 소품 등에 옻칠을 많이 사용했다.

반투명 유백색에 검댕이나 색소 더해 검정·붉은색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에서 처음 공개한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 고려 시대 작품으로, 2020년 일본에서 환수해온 작품이다. 김정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에서 처음 공개한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 고려 시대 작품으로, 2020년 일본에서 환수해온 작품이다. 김정연 기자

옻칠을 한 소품들은 대체로 검정색이나 붉은색을 띤다. 전시를 기획한 세계문화부 노남희 학예연구사는 “왜 검정색‧붉은색을 주로 사용했는지는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옻칠 소품은 무덤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며 “문화권에 따라 검정과 붉은색에 의미를 담아 칠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칠기 소품에서 볼 수 있는 반질반질하고 짙은 검정색은 옻나무 수액에 그을음을 섞어 만들었고, 주황색에 가까운 붉은색은 천연 안료인 ‘진사’를 섞어 표현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일본에서 환수해온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이 처음 공개된다. ‘나전’은 조개 등 패류의 껍데기, ‘대모’는 바다거북의 등껍질을 갈아 만든 장식이란 뜻이다. 노남희 연구사는 “전 세계에서 3점만 남아있는 작품 중 한 점”이라며 “자개를 얇게 가공해 붙여 국화와 넝쿨무늬의 곡선을 그렸고, 색칠한 대모로 화려함을 더한, 고려시대 나전칠기 기술의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선 유럽 수출용 '성경 독서대'도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일본에서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독서대. 'IHS'는 예수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성경을 올려놓기 위한 독서대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도쿄박물관 소장품. 김정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일본에서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독서대. 'IHS'는 예수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성경을 올려놓기 위한 독서대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도쿄박물관 소장품. 김정연 기자

이번 특별전에선 우리나라 칠기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태국, 베트남, 미얀마의 칠기도 전시된다. 중국은 옻칠을 두껍게 여러겹 겹쳐 칠한 뒤 조각칼로 무늬를 새기는 ‘조칠’ 기법을 많이 사용했고, 일본은 옻으로 그림을 그린 뒤 금가루를 뿌리고 표면을 평평하게 갈아내는 ‘마키에’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미얀마는 옻칠 위에 유리를 이용해 화려하게 꾸미고, 베트남은 자개를 붙일 자리의 나무를 파내 정교하게 제작한 게 특징이다.

까다로운 제작과정과 비싼 재료 탓에 양반가에서만 쓰던 나전칠기는 조선 후기 들어 평민층에도 퍼졌다. 사군자, 포도넝쿨 등 무늬가 많던 조선 전기 작품에 비해, 조선 후기에는 복을 비는 문구를 직접 새겨넣거나 호랑이, 원앙 같은 일상적인 상징을 넣은 물품도 많아졌다. 배게 양 옆을 막는 배겟모, 서류함 등 일상적인 물품에도 나전칠기가 쓰였다. 김정연 기자

까다로운 제작과정과 비싼 재료 탓에 양반가에서만 쓰던 나전칠기는 조선 후기 들어 평민층에도 퍼졌다. 사군자, 포도넝쿨 등 무늬가 많던 조선 전기 작품에 비해, 조선 후기에는 복을 비는 문구를 직접 새겨넣거나 호랑이, 원앙 같은 일상적인 상징을 넣은 물품도 많아졌다. 배게 양 옆을 막는 배겟모, 서류함 등 일상적인 물품에도 나전칠기가 쓰였다. 김정연 기자

아시아에서 자라는 옻나무를 이용한 제품이 유럽으로 수출된 흔적도 볼 수 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에서 제작된 칠기는 ‘남만칠기’로 불렸고, 이번 전시에는 성경을 얹을 수 있는 독서대가 공개됐다.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으로, 예수를 상징하는 ‘IHS’를 전면에 새겨넣었다. 노남희 학예연구사는 "아시아 지역에서 자라는 옻나무를 이용한 '옻칠'이 지역에 따라서 어떻게 다양하게 변모하는지 볼 수 있게 구성했다"며 "중국 상하이 박물관과 일본 도쿄박물관에서도 관련 작품을 출품해,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전 막바지 현대 작가들의 옻칠 작품을 전시한 공간에는 허명욱 작가의 '무제'와 함께 1년간의 작업을 기록한 영상이 함께 걸렸다. 김정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칠, 아시아를 칠하다' 전 막바지 현대 작가들의 옻칠 작품을 전시한 공간에는 허명욱 작가의 '무제'와 함께 1년간의 작업을 기록한 영상이 함께 걸렸다. 김정연 기자

전시 막바지에는 현대 작가들의 옻칠 작품이 흰 벽에 채워졌다. 허명욱 작가가 옻칠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1년을 기록한 영상도 전시장 한켠에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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