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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적자 한전, 전기료 동결…다음 정권에 떠넘긴 '적자 폭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올해에 이어 내년 1~3월 전기요금까지 동결했다. 대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이상 문제를 다음 정권으로 미룬 것이다.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 한국전력은 요금 인상을 건의했지만,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을 이유로 이를 막았다. 전문가는 탄소 중립 등 에너지 전환 정책 비용까지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내년 1분기 요금도 동결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있다. 연합뉴스

20일 한전은 내년 1분기(1~3월) 전기료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고 발표했다. 내년 1분기에는 지난 9~11월 평균 에너지 수입가격인 실적연료비를 반영해 전기요금을 정한다. 한전은 이 기간 실적연료비(467.12원/㎏)가 기준연료비(289.07원/㎏)보다 61.5% 올랐다고 했다. 연료비 상승분만큼 전기요금을 올리면 킬로와트시당(㎾h) 29.1원을 올려야 했다. 분기별 상한선을 적용해도 최소 3.0원/㎾h의 인상 요인이 있었지만, 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한전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필요성 등을 고려해 요금을 동결했다”고 했다.

정부와 한전은 올해 연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을 달리 받는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국제유가 등 연료비가 최근 큰 폭으로 올랐지만, 실제 전기요금은 변동은 거의 없었다. 지난 4분기 요금 분을 한 차례 인상했지만, 지난 1분기에 낮춘 요금을 원상태로 되돌린 것에 불과했다.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까지 동결하면서, 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다음 정권으로 미뤘다.

대선·고물가 눈치에 공공요금 잡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최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서다. 올해 9월까지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하다가 10월 3.2%, 11월에는 3.7%까지 올랐다. 201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내년 물가도 2%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당장 통제가 가능한 공공요금부터 다잡았다.

실제 전기요금과 마찬가지로 연료비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가스요금도 지난해 7월 이후 계속 올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9월부터는 LNG(천연액화가스)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작년 7월에 한차례 낮춘 요금도 회복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가스공사의 연료비 미수금만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비판 여론 눈치에 요금 인상을 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전기요금은 인상해도 조정 상하한선이 있어 그렇게 큰 폭으로 오르지 않는다. 만약 이번에 요금을 최대 상한선(3.0원/㎾h)까지 올렸다고 하더라도 4인 가족 한 달 평균사용량(350㎾h) 기준으로 1750원가량 오른다. 4인 가족 평균 전체 청구요금(5만5080원) 대비 약 3.31% 수준이다.

에너지 공기업만 적자 부담

한전·가스공사 당기순이익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전·가스공사 당기순이익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의 여론 눈치 보기에 에너지 공기업 적자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3분기까지 누적 기준으로 한전은 1조5814억원의 적자다. 특히 3분기에는 적자 규모가 1조259억원에 달했다. 전기 사용량이 주로 여름철에 많아 한전의 3분기 실적은 대체로 흑자를 내는데도, 적자를 본 것이다. 지난 3분기에는 전기 판매량은 늘었지만, 요금이 연료비 등 오른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적자 폭이 오히려 커졌다. 한전은 국회 제출한 2021~2025년 중장기재무관리계획에서 올해 영업손실 규모 4조3845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가스공사도 올해 2분기(-562억원)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3분기(-893억원)에는 적자 폭을 키웠다.

“요금 인상 없이 탄소 중립 불가능”

정부가 요금 인상을 계속 회피하면서, 에너지 비용은 물론 탄소 중립으로 인한 정책 비용까지 다음 정권에 떠 미룰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올해부터 기후·환경요금을 분리 고지하면서, 매년 환경 정책으로 발생한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환경 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다.

최근 정부는 미세먼지 감축과 탄소 중립을 위해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까지 오르면서 한전의 전력 구입비도 치솟았다. 실제 지난달 전력시장 도매가격(SMP)은 월평균 127.06원/㎾h으로 1월 SMP(70.65원/㎾h)와 비교해 약 79.8% 올랐다.

유승훈 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부가 말한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한전과 발전 공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목표만 높게 잡아놓고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것은 손발을 묶는 셈”이라며 “공기업 적자는 결국 국민이 다 치러야 할 비용이기 때문에 이를 방치하는 것은 미래 세대로 부담을 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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