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21세기 우렁각시, 겨울나무를 껴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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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89)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 동요 ‘겨울나무’ -

40대 이상이면 이 노래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청소년들에게도 이미 사랑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착한 표정이 되어버리는 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의 메가 히트 동요 ‘겨울나무’다. 그런데 수도 없이 따라 부르던 그 노래 ‘겨울나무’, 노랫말을 찬찬히 뜯어보니 무척이나 외롭다.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세상에나 이렇게나 안쓰러울 수가 없다.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가요도 아닌데 어쩜 이리 쓸쓸한지….

우렁각시가 함께하는 포근한 겨울,부개도서관. 아이패드.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우렁각시가 함께하는 포근한 겨울,부개도서관. 아이패드.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도서관의 월동준비는 겨울나무 안아주기

해마다 이맘때면 ‘월동준비’로 분주해지곤 했다. 내가 어릴 적, 사실 헤아리기도 너무 많은 세월이긴 하다. 찬바람이 불면 동네 연탄가게 부부는 밤낮없이 바빠졌다. 집집마다 겨울나기용 연탄을 비축하느라 분주했기 때문이다. 몇백장에서 몇천장까지 아마 그 부부의 대목은 설, 추석이 아닌 겨울 초입이었을 게다. 작은 용달이나 리어카에 연탄을 쌓아 올리고 몇 번이고 실어 나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연탄을 ‘연탄구이 고깃집’에서나 본 지금 세대는 실감이 나지 않을게 당연하다. 그 밖의 월동준비는 지금도 유효한 김장이 있겠다. 아! 해묵은 유머로는 시릴 옆구리를 데워줄 애인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긴 했다.

오늘날 월동준비는 어떨까? 우스갯말로 너도나도 ‘패딩교’에 빠져 두툼한 패딩 코트를 장만하고 뜨끈하게 온몸을 녹여줄 2021 최신상 탄소매트에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나무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트리허그로 겨울준비를 마친 거리. [사진 이정민]

트리허그로 겨울준비를 마친 거리. [사진 이정민]

인천의 부개 도서관 앞길, 푸르던 옷을 벗어 던진 겨울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겨울나무’ 노랫말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눈 쌓인 응달에서 긴 그림자를 말없이 드리우고 있지나 않을까. 하지만 웬걸? 길가의 겨울나무는 따스한 털실 뜨개옷을 입고 당당하게 찬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계절마다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 열매를 듬직하게 지켜주던 나무는 이제야말로 내 시간이 왔다는 듯 한껏 뽐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트리 허그(Tree Hug)’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트리 허그는 1970년대 인도에서 일어난 ‘벌목 반대 비폭력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지속 가능한 환경보호 운동으로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지금은 겨울나무에 재생 가능한 털실이나 옷감으로 나무를 감싸주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나무는 마치 서가 위에 꽂혀있는 그림책처럼 알록달록 발랄하다. 인천 부개 도서관의 자원봉사 동아리 ‘우렁각시’ 회원들의 마음이 엮어낸 뜨개 작품을 입고 있는 겨울나무는 더 이상 쓸쓸하지도 춥지도 않을 것 같다.

우렁각시가 몰래 한 겨울선물



인천 부개도서관 자원봉사모임 '우렁각시'가 제작한 트리허그 뜨개작품. [사진 이정민]

인천 부개도서관 자원봉사모임 '우렁각시'가 제작한 트리허그 뜨개작품. [사진 이정민]

설화에 나오는 우렁각시만큼 도서관의 각시들도 일 처리가 빠른 모양이다. 누군가의 의견이 나온 후 저마다 빠른 손길로 따뜻함을 엮어가기 시작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사진 속 뜨개 작품은 올 겨울 거리의 나무들에 입혀질 선물인 셈이다. 어릴 적 이리저리 모아둔 털실로 엄마가 떠 주셨던 스웨터만큼 포근할 게 분명하다. 아마도 저 나무들이 깜빡하고 낮잠을 자는 동안 재빠르게 옷을 입혀줬을지도 모르겠다. 몰래 한 겨울 선물인 셈이다. 그게 또 우렁각시의 특기(?) 아닌가!

알록달록 털실 옷을 입고 있는 나무를 보니 동장군도 기세를 부리진 못할 것 같다. 그래선지 올겨울 도서관의 월동준비는 여느 때보다 더 든든해 보인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도서관 창가에서 털실 옷을 입고 있는 나무들을 보며 미소 지을 우렁각시들의 따스한 손길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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