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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임신부 하혈" 초긴장···구급차속 출산 '숨가쁜 18분' 증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8일 새벽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코로나19 확진 산모가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가 태어난 구급차량 안 모습. 사진 양주소방서

18일 새벽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코로나19 확진 산모가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가 태어난 구급차량 안 모습. 사진 양주소방서

지난 18일 0시 50분쯤 다급한 119신고가 들어왔다. “부인이 30대 임신부인데 배가 아프다 한다. 하혈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의 신고였다. 산모 A씨는 코로나19 확진자였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집에서 재택치료 도중 산통을 느낀 것이다.

16곳 병원 "산모 받지 못한다" 

양주소방서 광적119안전센터 구급대가 신고 접수 25분 뒤 현장에 도착했다. 출동 지령이 다소 늦어졌기 때문이다. 확진자라 소방당국이 보건소에 연락을 취하고, 환자상태를 파악하는 문진 절차 등에 시간이 소요됐다. 레벨D 방호복을 갖춘 박은정 소방사·최수민 소방교는 A씨 상태부터 살폈다. 활력징후를 재보니 고열과 저혈압이 확인됐다. 서둘러 들것을 이용해 구급차 안으로 옮겼다. 양수가 터져 응급처치가 이뤄졌다. 같은 시간 상황실은 병상을 배정받으려 분주했다. 하지만 16곳의 병원에서는 “빈 병상이 없다” “받지 못한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구급차를 움직이지 못한 채 출동지에 정차해야만 만했다. 이동 중인 구급차 안에서의 출산은 산모나 태아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송할 곳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진통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오전 1시 22분쯤 A씨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첫째 출산 경험이 있던 산모는 “배에 힘이 들어간다” “진통제를 놔달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출산이 임박했다.

19일 경기도 양주소방서 광적119안전센터 박은정 소방사(사진 왼쪽), 최수민 소방교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 소방사 등은 전날 구급차 안에서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코로나19 확진 산모의 분만을 성공적으로 도왔다. 사진 양주소방서

19일 경기도 양주소방서 광적119안전센터 박은정 소방사(사진 왼쪽), 최수민 소방교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 소방사 등은 전날 구급차 안에서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코로나19 확진 산모의 분만을 성공적으로 도왔다. 사진 양주소방서

무사히 태어난 아이 

구급대원은 분만준비에 나섰다. 구급차 안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분만 키트가 보관돼 있다. 신생아 감싸개부터 탯줄을 묶는 결찰(結紮) 도구·패드·거즈·외과용 가위 등이 들어 있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지도 의사에게 원격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지도를 받았다. 박 소방사는 2018년 7월 간호특채로 임용됐다. 간호경력 10년, 소방경력 3년이지만 ‘산파’ 역할은 처음이었다. 당시 “무척 떨렸다”고 한다. 다행히 지난 10월 소방학교에서 모형 산모·태아로 분만 특별교육을 받은 게 도움이 됐다. 최수민 소방교는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소지한 구급대원이다.

분만 유도 끝에 오전 1시 33분 출산에 성공했다. 아기 코·입에서 이물질을 빼내자 “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현장 도착 후 16분 만이었다. 울면서 팔다리도 움직였다. 얼굴빛도 괜찮았다. A씨는 아이 건강부터 물었다. “건강하다”고 안심시킨 뒤 지도 의사의 설명에 따라 탯줄을 자르지 않고 묶어뒀다.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태맥이 뛰었다.

하지만 출산 후에도 병상 배정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당시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실외온도가 영하 12도였다. 구급대원은 산모와 아이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체온유지에 더 신경 썼다. 담요를 꼼꼼히 감싸고, 구급차 히터 온도도 높였다. 구급대는 일단 양주 광적면을 벗어나 의정부로 이동했다. 도로여건이 광적면보단 뛰어나서다. 이동 후인 오전 2시 2분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배정이 이뤄졌다. 20분 만에 응급실에 다다랐다.

아이 아빠의 눈물 

산모와 아이는 응급실로 무사히 인계됐다. 그때서야 박 소방사는 산모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상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단 사실을 알면 역시 재택치료 중인 보호자가 불안감을 크게 느낄까 봐서다. 수화기 너머 보호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느껴 울었다. 출산일이 임박해 산모가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산모와 아이는 현재 평택 박애병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둘 다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소방사는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현장활동을 하고 싶어 소방관에 도전하게 됐다”며 “이번 일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구급대원으로서의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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