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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절반의 성공 김정은, 내년 대선까지 현상유지 가능성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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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외교안보 연구기관장이 본 김정은 집권 10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 10년을 맞았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군사교육간부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 10년을 맞았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군사교육간부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스1]

17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27세에 북한을 ‘상속’받은 김 위원장은 “더 이상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출발했다. 하지만 변화의 몸부림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멈췄다. 대북제재 등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은 녹록지 않다. 김정은 정권 출범 10년을 맞아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유환 통일연구원장과 ‘김정은의 북한 10년’을 돌아봤다. 좌담은 원격으로 진행했다.

김정은 정권의 10년을 평가한다면.
▶김기정 원장=정치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미완, 즉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비전과 의지, 조건, (지도자의)역량이 있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리더십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악화했고, 이를 헤쳐 나갈 역량 부분에선 평가하기 이르다.

▶고유환 원장=김 위원장이 집권 직후 북한 체제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았다. 선대(先代)가 구축한 수령 체제에 올라타 출발했지만 자기 능력으로 체제를 끌고 가야하는 시점에서 김 위원장은 고모부인 장성택(2013년 12월)과 이복형인 김정남(2017년 2월) 등 권력에 도전할 만한 내부 요인을 제거했다. 또 김정은 중심의 유일지도체제를 공고히 해서 10년을 유지해 왔다.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했더라도, 경제적 효율성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없다.

정치 리더십 구축, 경제난 해결 미완
북미 하노이 노딜로 외부 협상 중단
대남 책임전가, 북 강경파 책임회피
한, 대북-외교정책 밸런스조절 못해
대남 적 규정은 유훈 거스른 무리수

고유환

고유환

김 위원장이 경제에 방점을 뒀다는 얘긴데, 북한은 오히려 핵무기 개발에 올인하지 않았나.
▶고 원장=김 위원장이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고 핵무기 개발에 질주했다.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경제발전 우선 노선을 천명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와 비핵을 교환하는 협상에도 나섰다. 핵무력 완성을 기반으로 경제문제를 풀고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2019년 2월)이 노딜로 끝나면서 자력갱생으로 돌아섰고, 북한식 보수주의 즉 전통 사회주의로 회귀하게 됐다. 외부 세계와의 타협이 결국은 막힌거다.

봄에서 겨울로 돌아간 한반도

북한은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왜 한국에 묻나.
▶고 원장=한반도의 봄(2018년)은 한국이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미국에 메시지를 전달했고,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이 원하는)일부 제재를 풀어 주고, 종전선언에도 긍정적이었다. 김 위원장도 하노이 회담에서 성과를 예상하고 팡파르를 울리면서 기차를 타고 하노이로 떠났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김 위원장이)체면을 구겼고, 미국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책임을 우리에게 넘긴 거다.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는 같이 움직인다.  2차 북·미 회담의 결과가 좋지 않자 북한의 강경 군부가 자신들에게 오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남 공세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위기가 오면 돌파를 위해 종파 투쟁을 통해 반대파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북한은 지난해 한국을 적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아버지(김정일)의 유훈을 거스르는 무리수다.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은 남북의 공존에 방점이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하노이 노딜은 북한도 가장 아쉬운 대목일 것이다. 미국은 국내 정치가 우선이고, 실무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정책 결정 구조의 경직성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는 것 같다. 자기 반성보다는 북한 당국자들이 (김 위원장으로부터)위임을 받아오지 못하는 구조에서부터 하노이의 노딜이 시작됐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물론 우리 스스로도 중재자에서 당사자로 이동하지 못했고, 대북정책과 외교정책 사이의 밸런스 조절에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가 조금 더 역할을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은 있다.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진행한 실무접촉에서 북한은 비핵화 방안과 관련해선 “원수님께서 오시면 해결된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바이든, 종전선언에 부담느끼는 듯

김기정

김기정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있는 건 미국과 협상 여지를 두고 있는 것인가.
▶김 원장=동북아의 국제정치 지도속에서 북한 정권이 가지고 있는 체제안보와 경제안보라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 두 가지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대화를 통한 해법이 돌파구일 수 밖에 없다. 현재 북한이 관망하고는 있지만 조건이 주어진다면 미국과 협상에 열성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고 원장=북한은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는데 추가 도발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또 제재를 영원히 버틸 수도 없다는 점에서 미국과 대화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중인 종전선언이 대화재개를 위한 돌파구가 될까.
▶고 원장=북한은 선결조건(이중적 잣대 및 대북적대정책 철회) 우선 해결론을, 미국은 조건없는 대화론 및 비핵화와 연계한 종전선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 남북미 사이에 시각차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이 모든 것을 대화로 해결하자는 제안을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내놓지 않고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추세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전체적인 판을 세밀히 다시 짜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평화와 북한 비핵화의 프로세스 어느 지점에선가 종전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나.

▶김 원장=정부는 종전선언을 평화체제 수립의 입구라고 설명한다. 일각에선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다음 정부에 한반도 평화 공존을 위한 지속적이고 작동가능한 메커니즘을 물려 주고 싶다는 설명을 북한이 판단하길 바란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로드맵은 종전선언→북·미 연락사무소 설치→평화협정 체결→북·미 수교다. 미국은 이전의 패러다임으로 한반도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현상유지를 깨기 위해 1992년 한·중 수교모델을 원용해 종전선언 이후 북·미 수교를 먼저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유화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종전선언의 이미지와 겹치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새 정부의 전략적 아이디어가 변수

내년 정세를 전망한다면.
▶고 원장=한국의 대선이라는 변수가 크다. 내년 3월 9일 대선이 끝나면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굉장히 빠르게 움직일 거다.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의 방향을 잡기 때문에 북한도 이를 의식할 거다. 최근 북한이 ‘정세의 안정적 관리’라는 말을 쓴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정면대결은 장기전으로 여기면서 전략 도발보다는 일단은 상황관리에 나설 거다.

▶김 원장=남·북·미, 넓게는 동북아시아에서 뭔가 변화가 있으려면 각 국가들의 전략이나 정치적 리더십이 변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모든 나라가 관리 모드다. 한국의 리더십이 내년에 바뀌는데 새 정부가 새로운 전략적 아이디어를 내놓느냐에 따라 상황 전개가 달라질 거다.  

북, 핵개발 완성뒤 경제 지표 곤두박질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직후 성장세를 보이던 북한 경제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2017년부터 하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가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북한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1%를 기록한 2015년을 제외하고 2016년까지 1.0%(2014년)~3.9%(2016년)의 플러스(+) 성장세를 보였다.

연평균 북한 경제성장률

연평균 북한 경제성장률

하지만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봄’ 이듬해인 2019년 0.4%로 반짝 성장하긴 했지만 2017년과 2018년 각각 -3.5%, -4.1%를 기록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북한이 셀프봉쇄에 나선 지난해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최대 낙폭인 -4.5%로 곤두박질쳤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연이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며 “하지만 대북제재가 강해지면서 북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대외교역과 대중교역 역시 급전 직하했다. 2012~2017년 사이 연평균 66.9억 달러(약 7조9200억원) 규모였던 대외 교역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28.4억 달러(약 3조3610억원), 32.5억 달러(약 3조8458억원)로 줄었고, 지난해엔 8.6억 달러(1조145억원)로 쪼그라들었다.

경제지표의 하향세 시점에 맞춰 북한은 노동당과 최고 인민회의를 소나기로 개최하며 타개책을 고심한 흔적도 보였다. 북한은 연평균 6차례 열던 회의를 2019년부터 8회→18회→13회(16일 현재) 개최했다. 정부 당국자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회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 기간 헌법을 5차례 개정하고, 당 규약도 세 차례나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