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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30년 한·중, 미래 30년 여는 새로운 눈 갖자” [한·중 언론인 대화 개막연설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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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언론인과 싱크탱크 관계자, 그리고 학계 인사 등이 참여하는 ‘제2회 한중 고위급 언론인-싱크탱크 대화’가 16일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한중 공공외교’를 주제로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계 전문가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으로 열렸다. 포럼은 한국 일대일로연구원(이사장 최재천)과 중국 신화사(사장 何平)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아래는 홍정도 중앙일보 JTBC 대표이사 부회장의 개막연설 전문.

“수교 30년의 한중, 미래 30년 여는 새로운 눈을 갖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뉘스먼셴성먼쌰우하오(女士們 先生們 下午好)’.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인 및 싱크탱크 전문가 여러분과 함께 한중 간의 우호협력 발전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돼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연말 바쁘신 가운데도 정성스럽게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최재천 일대일로연구원 이사장님과 허핑(何平) 신화사 사장님, 그리고 싱하이밍(邢海明) 대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해 제가 여러분께 중국어로 인사를 드릴 때는 ‘따쟈하오(大家好)’라는 한 단어 인사만 했었는데 올해는 세 단어의 인사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록 더디긴 하지만 저의 중국어 공부가 아주 조금씩 진도가 나가고 있다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긴 중국어 인사말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보름 정도 지나면 우리는 2022년 새해를 맞게 됩니다. 2022년 새해에는 한국과 중국에 모두 중요한 정치 행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에선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립니다. 두 행사 모두 양국의 정치 발전에 커다란 이정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봄에 치러지고 중국의 당 대회는 가을에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나라의 중요한 정치 행사 중간인 여름에 한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바로 내년 8월 24일이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지요. 30년 전 한중 두 나라의 지도자가 양국의 이데올로기와 체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미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손을 잡은 지 벌써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이 흘렀습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인물인 유신(庾信)은 “열매를 먹을 때는 그 열매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강물을 마실 때는 그 강물의 근원을 생각한다” (落其實思其樹 飮其流思其源)”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 한중 수교 30년에 즈음해 오늘과 같은 한중 관계 발전의 기초를 다진 선대의 노력을 새삼 돌이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군자의 은택도 5대가 지나면 끊긴다(君子之澤五世而斬)’는 맹자(孟子)의 말처럼 선대의 은덕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우리 세대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지난 9월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내년이 중한 수교 30주년”이라며 “공자(孔子)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삼십이립’은 “서른 살이 돼 흔들리지 않는 뜻을 세운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왕 위원의 말씀은 한중 간 우호가 한층 더 성숙해져 어떤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기를 기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왕 위원의 말씀은 ‘성숙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씀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같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뜻을 가진 ‘훠빤(伙伴)’, 즉 동반자(partnership)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해 이젠 많은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숫자 30은 또 ‘하동삼십년(河東三十年) 하서삼십년(河西三十年)’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중국에선 물길이 곧게 흐르면 강(江)이라 하고, 구불구불 흐르면 하(河)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장강(長江)과 황하(黃河)의 구별이 바로 물길의 생김새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지요. 한데 황하가 이리저리 굽이쳐 흐르다 보니 한때 황하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 30년이 지나선 황하의 서쪽에 있게 됐다는 데서 ‘하동삼십년하서삼십년’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말은 현재 한국에서도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를 표현하거나 변화무쌍한 인간사를 비유할 때 곧잘 쓰이곤 하는데 이 말처럼 한국과 중국 역시 지난 수교 30년 동안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많은 문제에서 서로 협력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경우엔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래전 중국의 한 학자가 한중 관계를 가리켜 ‘네 가지가 가깝다’는 ‘사근론(四近論)’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역사가 가깝고 문화가 가까우며 지리도 가깝고 감정도 가깝다(歷史近 文化近 地利近 感情近)”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분 말씀에 십분 동감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일이 항상 순조로울 수만은 없는 것이겠지요.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도 “인간사엔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이 있고 달에도 어둡고 밝은 곳, 차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예로부터 인생이란 완전하기 어렵구나”(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라고 읊었습니다. 한중 관계 역시 완전할 수는 없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게 바로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중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미디어는 양국 관계의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한국인이 중국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미디어를 통해서입니다. 10명 중 8~9명은 텔레비전과 신문, 인터넷 등 전통 매체나 뉴미디어를 통해 중국에 관한 소식을 접합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중국인도 중국 미디어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게 됩니다.
언론은 한중 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쟁점을 취급합니다. 어찌 보면 한중 관계 발전이 양국 미디어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국에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두 나라의 우호는 그 두 나라 국민 간의 우호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나라 국민의 생각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바로 언론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는 말에 이어 바로 “국민 간 사귐은 미디어 간의 친함에 있다(民之交在於媒相親)”는 말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미디어가 보다 활발한 교류와 협력으로 한중 우호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한중 언론은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요.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광을 발견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기존에 주어진 상황에만 집착하지 말고 아예 상황 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는 이런 사고의 연장선에서 한중 미디어가 한중 양국의 이상 징후를 체크하는 체온계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현재 기나긴 코로나 19와의 싸움 과정에 있습니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 개발 소식이 들립니다만 변이를 거듭하고 있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코로나와 싸울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 바로 체온계입니다. 코로나 감염 여부를 가장 손쉽게 체크하는 도구로 체온계가 쓰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한중 미디어가 한중 양국의 교류에서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미리 알아채는 체온계가 됐으면 합니다. 한중이 때론 협력하고 때론 다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중은 영원한 이웃으로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중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는 중국의 루쉰(魯迅) 선생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또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다 보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이 생기면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이와 함께 마음이 서로 오가며 함께 살아갈 궁리가 열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중 언론이 작은 것에서부터 협력을 시작해 조그만 골목길이라도 만들고 또 이것을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크고 새로운 탄탄대로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일대일로연구원과 같은 여러 민간단체가 힘을 더하면 보다 나은 한중 관계 30년의 미래가 열릴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 중앙미디어그룹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허핑 사장님의 신화사에서도 큰 힘을 보태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쎼쎼꺼웨이더링팅(谢谢各位的聆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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