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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인형은 사랑을 싣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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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함박눈처럼 쏟아진 인형이 빙판 위에 수북이 쌓였다. 2000년대 중후반 김연아를 취재하며 종종 봤던 장면이다. 당시는 그가 ‘여왕’이 아니라 ‘요정’으로 불릴 때다. 관중석의 팬들은 미리 준비한 인형을 힘껏 던졌다. 정말 장관이었다. 그중 한 번은 13년 전인 2008년 이맘때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가 고양 어울림누리빙상장에서 열렸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김연아 연기를 직접 보고픈 팬들로 관중석은 초만원이었다. 쇼트프로그램이 열린 첫날도, 프리스케이팅이 진행된 둘째 날도, 빙판 위로 인형이 쏟아졌다. 당시 소속사 관계자한테 들은 바로는 이틀간 수거한 인형이 1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소속사는 김연아와 상의해 인형을 아동복지시설에 기부했다. 인형을 던진 팬들도, 김연아도, 인형을 선물 받은 복지시설 아이들도,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었을 거다.

지난 13일(한국시각) 레알 베티스 팬들이 던진 인형이 경기장에 수북이 쌓여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3일(한국시각) 레알 베티스 팬들이 던진 인형이 경기장에 수북이 쌓여 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베티스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프리메라리가 17라운드 경기가 열린 지난 13일(한국시각) 베니토 비야마린 경기장. 홈팀 레알 베티스가 1-0으로 앞선 채 전반전이 끝나자 그라운드 가장자리로 인형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5만2000여 관중이 던진 인형은 1만9000여개였다. 구단은 경기 며칠 전 미리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형 기부행사 개최를 공지했다. ‘최대 크기는 35㎝, 무게는 300g, 건전지를 넣지 않는 부드러운 봉제인형’이라는 유의사항도 잊지 않았다.

올해 행사가 더욱 뜻깊은 건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행사가 열리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지난해 그냥 지나간 건 아니다. 구단은 무관중 경기가 열린 경기장 빈 관중석에 인형을 하나씩 배치했다. “이 인형을 하나씩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해달라”고 공지했다. 팬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경기장 행사를 한 해 건너뛴 팬들은 올해 더 열렬히 참여했다. 인형이 쏟아지는 장관을 (동영상으로) 보며, 이를 선물 받고 좋아할 아이들을 상상하며 흐뭇했다. 게다가 레알 베티스는 이날 4-0으로 크게 이겼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특히 성탄절을 앞둔 이맘때면 빙상장, 농구장, 미식축구장에서 비슷한 인형 던지기 행사가 열리곤 한다. 중요한 건 인형 선물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즐겁게 마음을 모을 수 있고, 이런 경험은 더 큰 자선을 끌어내고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이런 행사를 칭찬하고 소개하는 이유다. 지난해 프로축구 대구FC도 레알 베티스를 벤치마킹해 인형 선물하기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여러 종목에서 다양한 자선행사가 열렸다. 연일 프로야구에서 수십억~100억 원대 자유계약선수(FA) 소식이 쏟아진다. FA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 함께 훈훈해질 수 있는 소식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