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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급히 긴축의 칼 꺼낸 Fed…‘샤워실 바보’될 위험도

중앙일보

입력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인플레이션에 놀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급히 '매(통화 긴축)'의 발톱을 드러냈다. Fed는 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뒤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규모를 현재의 2배(월 3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돈줄을 죄는 속도를 당기겠다는 말이다. 기준금리도 내년에만 3번 올릴 뜻을 내비쳤다.

이번 FOMC는 '물가와의 전쟁'이 Fed에 떨어진 ‘발등의 불’임을 자인하는 무대였다. Fed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수급 불균형이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시각을 반영하듯 올해 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5.3%로 예측했다. 변동 폭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상승률도 4.4%로 전망했다.

속도는 떨어져도 물가 상승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과 2023년 근원 PCE 상승률도 각각 2.7%와 2.3%로 전망했다. 모두 Fed의 물가 목표치(2%)를 훌쩍 앞선다. Fed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표현을 이번 성명에서 삭제한 까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Fed가 지난 9월 이후 석 달 만에 공격적으로 급변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금리인상 확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금리인상 확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인플레이션의 화력이 세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수를 자처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높은 물가상승률이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도 “테이퍼링이 끝난 뒤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Fed가 속도를 내면서 테이퍼링 내년 3월 종료될 예정이다. Fed가 금리 인상 카드를 쓸 가장 이른 시점이 내년 3월인 셈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씨티그룹 등은 “Fed가 테이퍼링 끝난 직후인 내년 3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Fed워치도 “3월 인상 확률이 45%, 5월은 64%”라고 예측했다.

인상 시점을 앞당긴 것뿐만 아니라 금리를 높여가는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FOMC 위원의 금리 인상 전망이 담긴 점도표에선 18명 위원 중 10명이 2022년 말 금리를 0.75~1.0%로 예상했다. Fed가 일반적으로 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0.0~0.25%인 기준금리를 내년에 3번 인상할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내년에 4차례의 금리 인상을 예상(기준금리 1.0~1.25%)한 위원도 2명이나 됐다. 23년의 기준 금리를 1.25~1.5% 혹은 1.75~2.0%라고 전망한 위원은 각각 5명이었다. 미 기준금리가 1.75~2.0%가 되려면 지금 수준에서 0.25%포인트씩 총 7번을 인상해야 한다.

12월 FOMC 점도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2월 FOMC 점도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Fed는 또 다른 긴축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차대조표(B/S) 축소다. 파월 의장은 “이번에 대차대조표 축소를 처음 논의했다”며 “위원들은 현 상황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양적 긴축(QT)으로 불리는 대차대조표 축소는 채권 매각 등을 통해 자산을 줄이는 것이다.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보다 더 공격적이다.

코로나19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채권 매입으로 인해 Fed의 자산 규모는 크게 부풀어 오른 상태다. 지난해 1월 4조1000억 달러이던 Fed은 현재는 8조70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Fed는 과거 기준금리를 3회 인상한 뒤 대차대조표 축소를 예고했다”며 “이르면 내년 상반기 (양적 긴축)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Fed는 긴축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틀었지만 미국 경제가 이를 견딜 수 있다는 입장이다. Fed는 올해 실업률이 4.3%를 기록한 뒤 내년에는 3.5%로 떨어지면서 최대고용 수준으로 진입한다고 예상했다.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도 올해는 기존의 5.9%에서 5.5%로 하향 조정했지만, 내년 전망치는 3.8%에서 4.0%로 높여 잡았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로이터=연합뉴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Fed가 꺼낸 긴축 카드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경기가 생각보다 좋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Fed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긴축에 나서는 정책 실수를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충격이 더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Fed가 인플레이션이란 ‘지니(램프나 병에 사는 요정)’를 경기침체 없이 병에 다시 넣는 건 어렵다”며 "(긴축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암호화폐와 밈주식, 기술주 등 금융자산의 갑작스러운 가격 하락"이라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Fed가 ‘샤워실의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머스 교수는 “통화정책은 오래된 호텔에서 샤워기의 물 온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통화정책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샤워실의 바보’ 비유다. 빨리 물 온도를 올리려고 수도꼭지를 한쪽으로 과도히 돌리면 너무 뜨겁고, 반대로 하면 너무 차가워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정책 당국의 서툰 개입이 경기과열이나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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