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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라비던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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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24면

지난 12일 뮤지컬 ‘잭 더 리퍼’ 공연장. 19세기 런던을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마 잭을 처음 연기하는 신인 배우의 카리스마가 여느 고참 배우들 못지않다. 무대의 품격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클래시컬한 저음의 주인공은 베이스 김바울(30). 팬텀싱어 출신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의 멤버다.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올해 라비던스는 모든 멤버가 각자의 영역에서 꿈을 이뤘다. 솔로 데뷔앨범이 멀티 플래티넘 기록을 세운 테너 존노(30), 지난 8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만든 새로운 뮤지컬 ‘금악’의 히어로로 나선 황건하(24), 개인 앨범과 단독콘서트는 물론 JTBC ‘풍류대장’에서 맹활약한 소리꾼 고영열(28)까지. 개인 활동만 돋보인 건 아니다. 지난 여름 첫 앨범 ‘프리즘’을 발매하고 단독콘서트가 주간 예매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최근에도 신곡 2곡을 발표했고, 내년 1월엔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신년콘서트도 예정돼 있다.

‘헤쳐모여’를 반복하면서도 멤버들의 개인 활동엔 제일 먼저 달려간다. 바울의 뮤지컬 데뷔 무대도 다 함께 첫공을 관람했다. “깜짝 놀랐어요. 조금은 긴장할거라 생각했는데, 첫 등장부터 극을 끌어가는 에너지가 있더군요. 형은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는 뮤지컬 체질인 거예요.”(건하)“오글거리면 어쩌나 걱정도 잠시, 엄청 몰입하게 만들더군요”(영열)“본인은 분량이 작다고 했는데, 존재감이 엄청나서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엄청나게 성공한 데뷔인 것 같고 자랑스러워요.”(존) “예전 인터뷰에서 뮤지컬 도전이 꿈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이루게 되서 기쁩니다. 팀에 ‘슈퍼 뮤지컬 배우’가 있어서 그 뒤를 이어 시작하게 됐는데(웃음), 연습 내내 같은 작품에서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연기가 처음이라 낯설지만,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더군요. 매체 연기도 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배우고 있죠.”(바울)

뮤지컬 '잭 더 리파'에 출연중인 김바울 [사진 (주)글로벌컨텐츠]

뮤지컬 '잭 더 리파'에 출연중인 김바울 [사진 (주)글로벌컨텐츠]

‘슈퍼 뮤지컬배우’란 막내인 건하다. 지난 8월 ‘금악’에서 20대 답지 않은 포스로 근엄한 왕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는데, 역시나 멤버들이 앞다퉈 달려갔다. “처음을 함께 한다는 의미가 좋아서 웬만하면 첫공을 가요.”(존) “조마조마했는데, 첫공부터 너무 잘했어요.”(영열) “저는 촬영 때문에 중반에 봤는데, 무대와 물아일체가 돼 있더군요. 당연히 잘할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잘 어울렸어요. 창작극인데 음악도 너무 좋았구요.”(바울) “데뷔작인만큼 5년, 10년 미래를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택한 작품이었어요. 국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뮤지컬은 들어본 적 없었는데, 영열 형 영향도 있었죠. 라비던스로서 한국음악의 매력을 많이 느끼고 있었기에 아주 큰 메리트로 다가왔어요.”(건하)

뮤지컬 '금악'에 출연했던 황건하 [사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에 출연했던 황건하 [사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민요 활용한 크로스오버 4중창 개척  

최근 영열은 ‘풍류대장’ 세미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이미 라비던스로서 흥타령, 몽금포타령, 상주아리랑 등 국악 크로스오버 레퍼토리를 선보여 사랑받고 있는 입장에서 출전 자체가 반칙 아니었을까 싶은데, 절대 아니란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이라는 부제처럼 어마무시한 경력의 선배들이 다 나왔거든요. 저는 진짜 새발의 피도 안되는 존재였어요. 내 발전을 떠나 내가 하고 있는 국악이란 장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길목에 서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정말 큰몫을 할 것 같아서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자는 마음이었죠. 참가한 모든 분들이 옛날 대중음악을 현 대중음악 씬에서 다시 한 번 사랑받게끔 부단히 고민하는 분들이신데, 저도 꼭 함께 하고 싶었어요.”(영열)

화려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나름 수확도 컸다. 연구와 노력만이 살 길이란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아직도 제 안에 국악의 틀이 있었더라고요. 라비던스 통해 많이 깨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고, ‘풍류대장’에서 그걸 이미 깨고 있는 선후배들에게 충격을 받았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음악을 만들 것인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영열)

JTBC '풍류대장'에 참가했던 고영열 [사진 JTBC]

JTBC '풍류대장'에 참가했던 고영열 [사진 JTBC]

하지만 소리꾼들이 판소리 창법으로 팝송과 가요를 부르는 것을 대중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데엔 라비던스의 역할도 있었다. 민요를 활용한 크로스오버 4중창 영역을 개척했으니 말이다. “저희가 ‘팬텀싱어’에서 부른 흥타령이 많은 사랑을 받긴 했죠. 많은 선배님들이 계시지만, 저희의 자부심이라면 방송 관계자분들에게 국악을 조금이나마 어필한 것이죠.”(영열) “저희가 흥타령에 도전한 게 대중매체의 힘을 받아 시너지가 난 것 같아요. 음악교사를 하는 후배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기 수업에 영열이 사랑가를 쓰고 있다며 감사를 전하더군요.”(바울)

“개인 활동도 라비던스를 대표하는 마음”

존도 최근 솔로 데뷔 앨범의 멀티 플래티넘(2만장 이상 판매) 달성 소식을 전했다. 9월에 있었던 첫 리사이틀이 전석매진을 기록하고, 오페라 연출에 도전하는 등 하고 싶은 건 다 해본 한 해였다. “개인적으론 리사이틀이 가장 뿌듯했어요. 보통 클래식 공연은 레퍼토리를 듣고 싶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를 보러 와주신 거니까요. 그때 펼쳐진 광경이 상상도 못한 일들이었어요. 커튼콜에 객석에서 일제히 팬들의 핑거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정말 뭉클했어요. 클래식 공연장에서 보통 그런 걸 안하는데, 표현해 주셔서 너무 큰 감동이었습니다.”(존)

솔로 데뷔앨범 멀티 플래티넘을 달성한 존노 [사진 크레디아]

솔로 데뷔앨범 멀티 플래티넘을 달성한 존노 [사진 크레디아]

팬텀싱어 여러 팀 중 개인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지만, 홀로 무대에 설 때도 “라비던스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선다”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오히려 책임감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혼자 활동해도 이제는 ‘라비던스의 누구’로 통하니까요. 잘 못하면 팀에 마이너스가 되잖아요. 팀으로선 편안하고 즐겁게 활동하고, 밖에서는 책임감 때문에 더 긴장하게 되는 것 같아요.”(바울) “저도 라비던스로 이름을 알렸으니 라비던스의 아이덴티티가 먼저예요. 라비던스가 아니라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으니, 어디를 가든 라비던스를 나타내는 거라 생각하게 되요.”(존)“멤버들 공연을 왠만하면 다 보러 가는데, 대기실 표정이 달라요. 전쟁 나간 듯 비장함이 느껴지죠. 넷이 모이면 뭘 해도 그냥 즐겁게 하게 되구요.”(영열)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보낸 지난해에 비해 본격 활동을 시작한 올해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순간으로 빼곡하다. 첫 앨범 작업과 단독 콘서트 개최가 대표적이다. “8월 중순의 첫 단독 콘서트가 가장 재밌었어요. 저희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힘든 노래가 많았는데,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마음이 너무 즐거웠어서 지금도 그때가 자꾸 생각나요. 존 형은 얼마나 울었던지.”(영열) “저도 무대에서 눈물 흘린 적이 거의 없는데, 마지막에 ‘고맙습니다’를 부르는데  한명한명 눈빛으로 마주할 때마다 벅차올랐어요.”(바울) “저는 앨범작업 할 때가 기억나요. 한달동안 스튜디오에서 같이 살다시피 하면서 음악 얘기하며 지냈던 게 너무 좋았거든요.”(존)“누구 한명이 녹음실에 들어가면 나머지는 쉬고 있다가도,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게 보이면 다 일어나서 한마음으로 도와주게 됐는데, 저도 그게 참 좋았어요.”(영열)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첫 앨범 ‘프리즘’도 제목처럼 9개의 곡이 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졌지만, 지난달 추가로 발매한 ‘가을의 선물’과 ‘기억의 노트’는 또 다른 결이다. “코로나 때문에 지방에 단독 콘서트를 못갔거든요.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공연장이 없다면 계속해서 음원이라도 내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 신곡을 냈죠. 보여드릴 수 없다면 음악에 몰두하는 게 우리가 해야할 일일테니까요.”(바울) “두 곡은 작곡가들이 현역 악기 연주자들이라 그분들 연주 컬러에 맞는 노래가 나왔어요. 집시 기타리스트인 박주원님께 월드뮤직 같은 한국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부탁해서 ‘기억의 노트’가 나오게 됐고, 멜로망스 정동환님은 워낙 말랑말랑한 노래를 만드시는 분이라 ‘가을의 선물’같은 노래가 나온 거죠.”(영열)

23일에는 존의 솔로곡도 나온다. 내년 상반기 발매할 개인 크로스오버 앨범 수록곡 중 선공개한 ‘스타더스트’다. “팝페라 말고 좀 더 가요스럽고 팝적인 크로스오버를 해보고 싶어서 창작곡으로 채운 앨범을 준비중이거든요. ‘스타더스트’는 발라드곡인데, 뮤지컬 느낌도 좀 살려봤어요.”(존)

“해외 진출은 미국에서 ‘흥타령’부터”

각자 다른 영역에서 길을 가던 아티스트 4명이 팀을 이뤘으니 의견차이도 있을 터. 누군가 선장 역할을 할 법한데, 이들은 ‘만장일치형’ 의사결정 구조란다. “각자 역할은 있죠. 건하는 음식주문과 키 조정을 맡고, 제가 파트를 짜면 형들이 수정하고 소리 밸런스를 잡아주죠. 존 형이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만 다같이 결정해요.”(영열)“독재자 같은 성격은 없거든요. 아이디어를 내도 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수긍하죠.(웃음) 항상 만장일치로 정하니 뒤끝이 없네요.”(존)“그렇게 나온 게 ‘프리즘’이에요. 9곡 색깔이 다 다른 앨범이 된 거죠.”(건하)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선데이] 라비던스 인터뷰. 전민규 기자

한류 열풍에 소리꾼을 보유한 유일한 4중창 팀으로서 K크로스오버 선두주자로 나서고 싶은 욕심도 있을 터. 제일 먼저 어느 나라에 가서 무슨 곡을 부르고 싶냐는 질문을 던져 봤다. “저는 일본에서 ‘무서운 시간’을 부르고 싶어요. 어릴 때 일본에서 살았는데, 분명히 일본인들도 한국 음악을 좋아할 걸요. 억압과 핍박 속에서 살아남아 전세계에 뻗어나가고 있는 자랑스런 국악을 들려주고 싶네요.”(바울) “미국 가서 흥타령 불러야죠. 전혀 다른 인종에게 국악기와 함께 하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어요.”(건하) “개인적으로 미국에 멤버들 데려갈 데도 많고 노래 부를 곳도 많을 것 같아요. 한인들부터 시작해서 매니어틱한 미국팬도 생기지 않을까요. 인디밴드처럼 ‘잘하는데 나만 아는 아티스트’라는 자부심도 줄 수 있을테고요.”(존) “만장일치를 해야 하니까 미국에 가겠습니다. 가이드도 계시고(웃음), 기회도 많을 것 같네요.”(바울) 라비던스는 만장일치가 정말 잘 되는 팀이었다.

유주현 기자/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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