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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20% 자산 1.6억 증가할 때, 하위20%는 350만원 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변호사인 권모(38)씨는 올해 초 전세 보증금을 빼고 월셋집으로 이사했다. 보증금이 오른 데다, 목돈을 좀 더 불려 놓아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고 봐서다. 권씨는 “연 소득이 1억원 가까운 수준으로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많이 버는 게 사실”이라며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3년 전만 해도 대출받아 살 수 있던 집을 지금은 꿈도 못 꾸게 됐다. 일찌감치 대출받아 집을 산 친구들보다 가난해졌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세가 소득 증가보다 빠르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있는 사람’은 더 빠른 속도로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은 이를 따라가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라 등장한 이른바 ‘벼락거지’에 대한 자조와 한탄이 점차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커진 자산 격차, 따라가긴 더 어렵다

16일 통계청이 공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 순자산(자산-부채) 상위 20%(5분위)의 평균 순자산액은 12억8519만원이다. 순자산 하위 20%(1분위)의 순자산 1024만원보다 12억7495만원이 더 많았다. 5분위와 1분위의 절댓값 격차가 역대 최고로 벌어졌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3~4월 가구별 자산을 조사한 통계다.

자산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산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분위 평균 순자산을 1분위로 나눈 순자산 5분위배율은 125.5배에 달했다. 5분위배율은 자산 양극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5분위배율 자체는 지난해(166.6배)와 비교하면 41.1배 포인트가 줄었지만, 워낙 절댓값 격차가 벌어지다 보니 체감하는 자산 격차는 더 커졌다는 풀이가 나온다.

5분위, 자산 증가폭 역대 최고 

지난해 5분위 순자산 평균액은 11억2481만원이었다. 지난해에서 올해로 넘어오는 1년 사이에 상위20%는 자산이 1억6038만원 증가했다. 통계청이 해당 통계의 조사방식을 바꾼 2017년 이후 5분위 순자산액이 1억원 이상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같은 기간 1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액은 675만원에서 1024만원으로 349만원 증가했다.

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가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로 분석한 결과 서울시 아파트 가격 누적상승률은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10월까지 93.9%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때 누적상승률(23.5%)의 4배다.

실제 상위 20%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자산(평균 14억8529만원) 중 부동산(11억6971만원)이 84.4%를 차지한다. 자산 대비 부동산 비중은 ▶4분위 73.1% ▶3분위 62.7% ▶2분위 47.3% ▶1분위 29.5% 등으로 가구의 소유 자산이 적을수록 수치가 함께 내려갔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5분위와 4분위는 부동산 비중이 커졌고, 나머지는 줄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계층 간 자산 격차를 벌리는 구조다.

자산 많을수록, 부동산 비중 컸다

순자산 5분위별 자산유형별 구성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순자산 5분위별 자산유형별 구성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렇다 보니 부동산 투자 의사가 있는 가구는 57.6%로 지난해(52.8%)보다 4.8%포인트 증가했다. 부동산의 상승을 목격한 만큼 투자 선호가 여전한 것이다. 투자 대상 부동산으로는 아파트 선호가 61%로 가장 높았다. 1년 후 거주지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보는 가구도 35.6%로 1년 전보다 12.6%포인트 늘었다. 부동산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정부와 달리 집값 하락을 전망한 가구는 되레 줄었다.

‘소득격차〈〈〈자산격차’

자산 양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 중 하나는 연 1억원이 넘는 자산 증가를 소득으로 따라잡기 어려워서다. 소득 기준으로 나열했을 때 상위 20%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2019년(6703만원)에서 지난해 6892만원으로 189만원 증가했다. 자산 증가속도에 못 미친다.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3분위 가구는 지난해 평균 2999만원의 가처분소득을 기록했다. 이를 5.3년을 모아야 자산 5분위에서 1년간 증가한 순자산액을 따라갈 수 있다.

하위 20%와 상위 20% 소득이 몇 배나 차이 나는지 보여주는 ‘소득 5분위배율’을 순자산 5분위배율과 비교해도 격차가 두드러진다. 소득분배지표인 소득 5분위배율은 2019년 6.25배에서 지난해 5.85배로 개선됐다. 순자산배율과는 자릿수부터 달랐다.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상생 국민지원금(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상생 국민지원금(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소득 분배지표가 개선된 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재난지원금 같은 재정 지원이 역대급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100배(2017년)가 안 됐던 자산 격차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와 5분위 자산의 급격한 증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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