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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실트론 사건' 최태원, 왜 공정위 출석하는 정공법 택했나

중앙일보

입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SK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사익편취 논란에 대해 직접 소명하기 위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SK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사익편취 논란에 대해 직접 소명하기 위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뉴시스]

15일 오전 9시 50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2동 공정거래위원회 정문. 검은색 차량에서 내린 최태원(61) SK그룹 회장이 누런 서류 봉투를 들고 입구에 들어서자 취재진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최 회장은 이날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논의될 SK실트론 인수 과정에서의 ‘사익 편취’ 의혹에 답변하기 위해 공정위를 찾았다. 당사자 참석이 필수가 아닌 공정위 전원회의에 대기업 총수가 출석한 것은 최 회장이 처음이다.

왜 개인 자격으로 지분 인수했나

현장에는 SK그룹 임직원 30여 명을 포함해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최 회장은 ‘총수 본인이 직접 소명하러 온 이유가 뭔가’라는 기자 질문에 “수고 많으십니다”라고만 했다. 이어 ‘사익 편취나 부당 지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근거’ ‘향후 위법 판단 시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들어갔다.

공정위 쟁점은 2017년 SK㈜가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사익을 편취했는지 여부다. 당시 최 회장은 LG실트론 지분 29.4%를 개인 자격으로 취득했다.

SK㈜가 잔여 지분을 모두 인수하지 않고, 최 회장이 일부를 인수한 건 추후 가치 상승과 수익을 노린 거란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8월 공정위는 SK㈜와 최 회장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최 회장 검찰 고발 등의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만들었다.

SK실트론 실적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SK실트론 실적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SK㈜는 주총 특별결의 요건(지분 3분의 2 이상)을 충족하는 지분을 이미 확보해 잔여 지분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강조한다. 경쟁 해외 업체가 지분을 취득하면 경영에 간섭할 우려가 있어 최 회장이 사재를 들여 지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 업체까지 참여한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투명한 방식으로 지분을 취득했다며 ‘사업기회 제공’이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최 회장 측은 “만약 단순히 재산 증식 의도가 있었다면 SK실트론 같은 비상장사 대신 상장이 임박한 다른 계열사 등에 투자해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날 전원회의에는 위원 9명 중 5명만 참석했다. 과거 SK 측을 대리한 로펌 소속 변호사였다는 이유 등으로 일부 위원이 심사에서 제외되면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과 김재신 부위원장, 윤수현 상임위원, 이정희 비상임위원(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최윤정 비상임위원(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등 5명이다. 이들이 전원 합의해야 SK㈜와 최 회장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수 있다. 결과는 다음 주 중 나올 가능성이 크다.

“주변 만류에도 본인 출석 의지 강해”

이날 최 회장이 직접 출석한 이유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해명하고 싶은 내용이 있더라도 사상 첫 대기업 총수의 출석으로 뉴스 초점이 되고, 공정위가 더 면밀한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는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냐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SK 측은 “당시 상황과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이고,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지분을 취득한 과정을 충실하게 위원들에게 설명하고자 출석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SK 관계자는 “(최 회장 주변에선) 다른 대기업 총수도 안 가는데 굳이 안 가도 된다는 의견을 냈다”며 “하지만 회장이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반도체 비즈니스 전략상 고민까지 위원들에게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외국 자본이 당시 지분을 인수하려 했던 상황을 다른 통로로 이야기하면 향후 해외 사업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비공개를 전제로 직접 설명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날 출석을 최근 최 회장이 보인 행보와 연결 짓는 이들도 있다. ‘대기업 총수는 이렇다’는 통념을 깨는 동시에 재계 맏형이자 사회 리더로 존재감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올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은 뒤 광폭 행보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미국을 네 차례나 찾아 정·관계 인사를 두루 만났다. 한·미·일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학자, 재계 인사 등을 한자리에 모은 집단지성 플랫폼도 만들었다.

최태원 SK회장 인스타그램.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최태원 SK회장 인스타그램.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사생활도 과감하게 공개했다. 지난 5월 노소영(60)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법정에도 나타났다. 이혼 소송은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지만, 이례적으로 1년 4개월 만에 법정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6월부터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여러 댓글에 직접 답변하는 등 소통에 나섰다. 지난 2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5가지 마라’는 제목의 글에선 “가면 쓰지 마라. 인생은 연극 무대가 아니다. 니 모습 있는 그대로 행동하되, 진짜로 더 나은 사람이 돼보려고 노력하는 게 낫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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