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해상풍력 어디에 지어야 하나…급할수록 돌아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이달 초 미국 하버드대와 중국 산둥대 등의 연구팀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특이한 논문을 게재했다. 중국 연안의 해상풍력으로 생산한 수소가 일본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050년 연간 2000만톤의 수소를 ㎏당 2달러 이하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대규모 해상풍력 건설에 일본 자본을 참여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고, 한국의 수소 시장도 살짝 넘보았다.

하지만 한국에도 이미 해상풍력 붐이 일고 있다.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11월 현재 전국 9곳에 51기의 해상풍력 발전기가 건설됐다. 142㎿(메가와트) 규모다. 전체 풍력 발전설비 1.6GW(기가와트, 1GW=1000㎿)의 8.7%다. 이것 말고도 전국 46곳에 해상풍력 발전사업이 허가돼 10.3GW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에다 전국 바다·섬 200여 곳에는 풍황(風況) 계측기가 설치돼 있다. 발전사업 진출을 위해 데이터를 얻으려는 것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하려면
바다 위 터빈 100GW 세워야
생태계 훼손, 어업인 피해 우려
환경평가 간소화 꼭 해야 할까

육상풍력 늘이는 데 한계 있어

제주시 한경면 앞바다에 설치된 30㎿ 규모의 탐라 해상풍력단지. 2050년까지 이런 규모의 시설 3300개가 필요하다. [사진 환경부]

제주시 한경면 앞바다에 설치된 30㎿ 규모의 탐라 해상풍력단지. 2050년까지 이런 규모의 시설 3300개가 필요하다. [사진 환경부]

이런 열풍은 한국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때문이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풍력·태양광 발전으로 대체해야 한다. 2030년까지 전력 생산 중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2%(태양광·풍력 등 순수 재생에너지 비중은 27.4%)로, 2050년까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60~70%로 높여야 한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태양광은 300GW 이상, 풍력은 150GW 이상 설치해야 한다. 생태계 훼손과 주민 소음 민원 탓에 육상풍력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해상풍력을 100GW 규모로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장 2030년까지 해상풍력을 16~17GW 규모로 끌어올려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해상풍력을 설치할 공간이 있느냐다. 지난 7일 국회 김원이·양이원영 의원 등이 주최한 ‘탄소중립을 위한 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 토론회’에서 해양수산부 황준성 해양공간정책과장은 “바다가 넓다고 해도 막상 해상풍력을 설치할 데가 많지 않다”며 “군사보호구역이 있고, 기존 해상통로나 항로도 있고, 부산 해운대 청사포 경우처럼 조망권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바람이 좋은 곳은 조류(潮流) 흐름도 좋다. 전남 신안의 새우 어장이나 경남 통영의 멸치 어장처럼 물고기도 잘 잡히는 주요 어장과 겹쳐 어업인의 반대도 많다. 해상풍력이 새들의 먹이 활동, 철새들의 장거리 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있다.

반발과 우려는 큰데, 시간은 촉박하다. 지난 5월 김원이 의원 등이 ‘풍력발전 특별법안’을 발의한 이유다. 이 법안에 대해 한국환경연구원(KEI) 조공장 선임연구위원은 “민간부문에서 진행하던 해상풍력을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형태로 바꿔 환경 훼손을 줄이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별법안에서는 육상풍력과 차별화해 해상풍력을 건설을 앞당길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해상풍력 후보지를 골라 ‘고려(考慮)지구’로 지정한 뒤, 사전환경성검토 또는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해 적합하다고 확인되면 ‘발전지구’로 지정하게 된다. 이곳에서 발전사업을 맡을 사업자를 공모하고, 사업자가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는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과제는 남아있다. 기존에 사업허가를 받은 곳이나 풍황계측기를 설치한 곳이 고려지구·발전지구 밖에 위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미 내준 허가를 취소하기도 어렵고, 해당 업체의 피해를 보상하는 일도 복잡하다. 막상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할 경우 주민·어업인·환경단체가 반발할 수도 있다.

군 작전, 해상 교통 변수 많아

여기에 군 작전이나 해상 교통에 문제는 없는지, 바다 밑에 묻힌 문화재는 없는지 별도로 따져야 한다. 풍력발전 업계는 업계대로 “능력을 갖추기도 전에 너무 서둘다가 자칫 해상풍력 설비·운영을 해외 업체에 다 빼앗겨 관련 산업도, 일자리도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해상풍력은 지구(Global)-지역(Local)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지구 기온 상승이 지구 행성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y)을 이미 넘어섰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외면할 수도 없다. 지구 전체가 망가지는데, 지역 생태계 보전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지구 차원의 환경 문제를 너무 앞세우다 보면, 당장 눈앞의 환경 훼손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 ‘바늘허리에 실 못 맨다’는 속담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해야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이해 관계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필요한 절차는 밟아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를 날림으로 하고 공사를 강행한 4대강 사업의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 탄소중립을 이룬 2050년에도 새들은 날아야 하고, 우리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