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부는 대학입시서 손 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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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3불(본고사.고교등급.기여입학 금지)로 대학들을 묶더니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라 하고, 논술 가이드라인을 만들더니 이제는 논술을 쉽게 하라고 한다. 내년에 시행되는 새 입시제도에서는 수능과 학생부가 과목별 등급(9등급 기준)으로 표시돼 변별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규제와 변화로 대학입시는 개선됐는가. 한마디로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안.고통에 시달리고 대학은 대학대로 불만이다. 왜 상황은 더 악화하는 것일까.

학생부 반영 비율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학생부 중심의 선발은 학생들에게 '피 말리는 고통'을 안겨준다. 고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 학우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어찌 피 말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는 더욱더 사교육에 의존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빈부 격차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것임이 분명하다.

수능에서 등급만 제공되면 입시에서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학 지원 기준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자신의 수능 등급으로 어느 대학을 지원해야 할지 알 수 없는데 어찌 혼란이 없겠는가. 수능 2~3과목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1~2개의 상위권 대학에 몰리게 되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어디에 지원해야 할지 우왕좌왕할 게 뻔하다. 대학에서의 동점자 처리는 또 다른 문제다. 상위권 대학들은 모집 단위별 상위 5% 이내에서 발생할 동점자 처리로 고민할 것이고 중하위권 대학에선 동점자가 더 넓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등급의 다른 문제점은 패자 부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부에서 중하위 등급의 학생이 상위 등급의 학생을 극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1학년 학생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을 경우 애초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양산될 수 있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현재 시행 중인 논술 가이드라인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답이 없어야 하고, 특정 지식에 근거하지 않아야 하며, 영어 지문을 사용할 수 없다. 이는 분명 시대에 역행하는 요구다. 답이 없는 것을 왜 질문해야 하고, 지식기반산업 구조에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왜 잘못됐으며, 유치원에서도 가르치는 영어를 고교 졸업생들에게 묻지 말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논술 가이드라인을 대학들이 지키려 하다 보니 논술이 자꾸 어려워진다. 고교 교과과정에 논술 과목이 없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논술 난이도를 낮추라고 하니 그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난이도의 기준이라도 있어야 낮추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코미디다. 이 같은 코미디에 학생.학부모들만 희생되고 있다.

이러한 입시제도의 문제들은 대부분 어설픈 평등주의의 산물이다. 대한민국의 그 잘난 진보적 평등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웃기에는 너무 심각한 코미디가 바로 입시제도다. 그러나 이제는 평등이 아니라 경쟁이다. 경쟁을 통한 우수한 인재 확보가 우리의 살길이다.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에 근거하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더 바람직한 대안이 보인다. 첫째, 정부는 대학입시에서 학생부 반영 비율과 등급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고등학생들도 숨 쉴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둘째, 입시 규제들을 폐지하고 고교 교과과정에 준하는 내용과 난이도가 적용된다는 조건에서 대학별 고사에서 학력 검증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답과 통일된 형식이 없는 논술을 학생들에게 요구하느니 차라리 학력 검증이 더 합리적이고 정당하지 않은가. 이는 패자 부활을 가능케 한다. 마지막으로, 입시제도를 좀 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게 해야 한다.

현선해 성균관대 입학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