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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나가는 이판사판의 나라"…올해 사자성어는 '묘서동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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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서동처(猫鼠同處)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묘서동처'(猫鼠同處). 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총장이 행서체로 휘호했다. [교수신문=뉴스1]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묘서동처'(猫鼠同處). 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총장이 행서체로 휘호했다. [교수신문=뉴스1]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정리하며 뽑은 사자성어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것을 비유한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의 대학교수 88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9.2%가 ‘묘서동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고 12일 밝혔다.

이 사자성어는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 처음 등장한다. 한 지방 군인이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고 서로 해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의 상관이 그 고양이와 쥐를 임금에게 바치자 중앙관리들은 복이 들어온다며 기뻐했다. 오직 한 관리만이 “이것들이 실성했다”고 한탄했다.

일반적으로 쥐는 곡식을 훔쳐먹는 ‘도둑’에 비유된다. 고양이는 쥐를 잡는 동물이다. 둘은 함께 살 수 없는 관계지만 그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은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 패거리(한통속)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묘서동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데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 교수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묘서동처 격이라면, 한 마디로 막 나가는 이판사판의 나라”라며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묘서동처의 현실을 올 한해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걱정하는 의미로 묘서동처를 선택한 교수들도 있었다. 한 60대 사회계열 교수는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해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 40대 교수도 “누가 덜 썩었는가 경쟁하듯, 리더로 나서는 이들의 도덕성에 의구심이 가득하다”고 평했다.

‘인곤마핍(人困馬乏)’이 두 번째로 많은 21.1%의 선택을 받았다.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기나긴 피난길에 ‘날마다 도망치다 보니 사람이나 말이나 기진맥진했다’고 한 이야기에서 따왔다.

인곤마핍을 추천한 서혁 이화여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비의 피난길에 비유하며 “코로나19를 피해 다니느라 온 국민도 나라도 피곤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

3위(17.0%)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 4위(14.3%)는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의 ‘각주구검(刻舟求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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