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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입당 서류 돌려달라"…조기분양 놓고 싸움난 위례호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위례호반써밋 아파트에 붙어있는 현수막들. 최근 호반산업 측의 조기 분양전환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허정원 기자.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위례호반써밋 아파트에 붙어있는 현수막들. 최근 호반산업 측의 조기 분양전환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허정원 기자.

지난 8일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의 위례호반써밋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건 ‘밀실합의’, ‘기습분양’ 등이 적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당초 ‘4년 임대 후 분양’으로 올해 2월 입주가 시작됐지만, 임대 개시 9개월 만에 조기 분양전환이 추진되면서 갑작스레 5~10억 원의 분양가를 내게 된 임차인들이 생겨난 데 대한 불만이었다.

이들 임차인은 "연초부터 입주민의 30~40%만 모인 입주예정자협의회(이하 입예협)가 비공개 단톡방을 만들어 조기분양을 논의하다 보니 상당수 임차인들이 배제되고, 단지가 둘로 쪼개졌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입예협 임원이 ‘조기분양 전환을 위해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하남시장의 지원을 얻어야 한다’며 주민들에게 단체민원과 민주당 입당까지 유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조기분양에 도움된다고 해 가족까지 입당”

입주예정자 협의회 임원진 A씨가 입주민 B씨에게 보낸 민주당 가입 절차 안내문. [입주민 제보]

입주예정자 협의회 임원진 A씨가 입주민 B씨에게 보낸 민주당 가입 절차 안내문. [입주민 제보]

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위례호반써밋 입예협 입주민 중 상당수가 임대아파트 조기분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민주당에 입당한 임차인 B씨는 “협의회 임원진인 A씨가 ‘민주당 소속인 하남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아파트 조기분양이나 적정 분양가 형성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다”며 “A씨로부터 입주민 200여 명이 가입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B씨는 “민주당원증이 많으면 좋다고 해 남편과 딸, 새로 이사 온 조카들까지 입당시켰다”며 “가입 서류를 종이로 20장 정도 받았다. A씨가 앱으로 가입하는 방법을 개별적으로 안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입예협 단톡방을 보면 한 입주자가 “민주당 당원 가입서를 단체로 제출하는 건 어떨까 조심스레 여쭌다”며 “민주당 입장에선 천군만마이고, 우리 입장에선 우리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하는 등 입당 관련 논의가 오갔다.

집단민원에 민주당 입당까지 한 배경은

입주민들이 민주당에 가입한 지난 5월말경 입주예정자협의회 단톡방 캡처본. [입주민 제공]

입주민들이 민주당에 가입한 지난 5월말경 입주예정자협의회 단톡방 캡처본. [입주민 제공]

입주민들이 둘로 쪼개진 것은 조기 분양에 따른 분양가격 때문이다. 호반산업은 2017년 이 아파트를 ‘4년 임대 후 분양’ 방식으로 공급했고 올해 2월 준공해 입주가 시작됐다. 그러나 입주 직후 전체 세대(699세대) 중 200~300세대만 모인 입예협 중심으로 조기 분양 전환이 논의되면서 갈등이 야기됐다. 입예협 단톡방에 가입했던 입주민 C씨는 “적정한 수준에서 분양가가 형성되도록 하남시를 상대로 수차례 민원을 넣거나 민주당 입당원서를 받는 등 집단행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남시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부 입주민들이 당원가입을 한 건 맞다”면서도 “시에서는 누구도 당원가입을 언급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하루에만 조기분양을 원하는 민원이 수십 건 들어왔지만 해당 아파트는 민간임대여서 애초부터 시가 (분양가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입예협 임원진의 해명을 듣기 위해 문자·전화 등을 통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다만 해당 단톡방에선 “당원가입에 대해 불쾌해하는 분이 계시는데, 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가입을) 강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등의 얘기가 오갔다.

“정보 새면 세대당 3000만원 벌금”…양분된 단지 

입주민 200~300명이 소속된 입주예정자 협의회 단체카톡방 입장 전 임원진이 받은 확약서. [입주민 제공]

입주민 200~300명이 소속된 입주예정자 협의회 단체카톡방 입장 전 임원진이 받은 확약서. [입주민 제공]

이 아파트의 조기분양이 결정된 후 입주민간 갈등의 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입예협 단톡방에 속하지 못했던 임차인들이 분양전환 논의에서 소외된 데다 호반산업 측이 제시한 분양가가 주민들의 예상을 훨씬 웃돌아서다. 입예협에서 소외됐던 임차인 D씨는 “지난달 26일 돌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위례2차 호반써밋 조기매각 안내문’이 붙었다”며 “공청회조차 없었던 터라 어이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협의회 단톡방을 중심으로 이미 절차가 끝났더라”고 말했다.

단톡방을 개설한 입예협 임원진은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가입시 확약서와 회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확약서 내용엔 ‘본인 책임으로 분양전환 가격에 대한 협상 정보가 유출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며 확약서를 제출한 전체 세대에 각 1세대당 일금 3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확약한다’고 돼 있다. “민원을 한 번도 안 쓴 분은 내보내겠다.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단체행동을 요구하는 문구도 담겼다.

“갑자기 수억 어디서…입당 서류 돌려달라”

지난달 말 위례호반써밋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조기매각 공고문 일부. [입주민 제공]

지난달 말 위례호반써밋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조기매각 공고문 일부. [입주민 제공]

당초 예상보다 높은 고분양가가 제시되자 조기분양을 추진했던 입예협 주민들도 당황했다는 말이 나온다. 호반산업이 공고한 분양가는 ▶101㎡ 12억900만원 ▶109A㎡ 13억700만원 ▶109B㎡ 13억700만원 ▶147㎡T 19억2900만원. 2017년 계약할 당시 임차 보증금보다 5억8900만~9억3900만원이 높았다.

D씨는 “계약기간(12월 10~12일)을 2주 앞두고 분양전환 공고가 났는데 그 큰 돈을 단기간에 어디서 마련하겠나”며 “4년만 살고 나갈 줄 알았으면 아예 입주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주민은 “정치색도 안 맞는 민주당까지 가입했는데 이게 뭐냐”며 “민주당 당원가입 서류를 돌려달라”고 했다. 입주민들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새로 꾸리고 적정 분양가 협상에 나선 상태다.

호반, “조기분양 희망주민 많았다…공청회도 거쳐” 

지난달 26일 호반산업 측이 조기분양가와 분양일정을 통보하자 입예협에서 소외됐던 주민들을 중심으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입주민 제공]

지난달 26일 호반산업 측이 조기분양가와 분양일정을 통보하자 입예협에서 소외됐던 주민들을 중심으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입주민 제공]

호반 측 관계자는 “4년 임대 후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뛸 것을 걱정해 조기분양을 원하는 주민이 많았던 데다 공청회도 거쳤다”며 “해당 아파트는 북위례임에도 남위례 시세의 80% 수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호반 측이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일반분양을 하지 않고 임대 후 분양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입주민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정부의 7·10 부동산 대책에 따라 8년 임대 아파트 및 4년 임대 등록임대사업자 제도가 폐지됐다”며 “임대 공급 후 법이 바뀌어 입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합법적으로 분양전환을 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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