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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3만원, 결제하니 26만원"…속아도 모르는 '어둠의 상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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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0월 연휴 기간에 맞춰 2박3일 가족여행을 준비하던 A씨. 한 호텔 예약 플랫폼에서 숙소를 검색하다 ‘1개 남았어요’라는 문구를 보고 서둘러 예약했다. 하지만 며칠 뒤에도 이 호텔은 동일한 가격과 구성으로 예약을 받고 있었다. A씨는 “플랫폼에 떠 있는 정보만 믿고 진짜 하나 남은 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색 화면에는 1박에 23만원이었는데, 실제 결제를 진행하니 1박에 26만원이 들더라”며 “나중에 광고 하단에 ‘세금 및 수수료 불포함’이라는 문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속은 기분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세계 주요국 공정거래 당국이 온라인상에서 소비자를 은밀히 속이는 이른바 ‘다크패턴’(소비 유도 상술)에 대한 주의보를 발령했다. 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대표부에 따르면 OECD는 지난달 주요국 경쟁 당국이 참석하는 ‘소비자정책위원회’를 개최하고 다크패턴의 유형과 소비자 피해 사례, 그리고 이를 예방할 입법 방안과 국제 공조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에 따르면 다크패턴은 소비나 이용횟수를 늘리기 위해 쓰는 속임수 정보를 뜻한다. 주로 인터넷·모바일 등에서 소비자의 인지·행동편향을 악용해 소비자의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거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 ‘불법’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넘지 않는 데다, 당사자도 속았지만 속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규제가 쉽지 않다.

예컨대 판매 마감 시각을 카운트다운하거나, ‘마감 임박’ 등의 내용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자칫 나만 좋은 기회·물건을 놓칠 수 있다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이용해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배송비 늦게 띄우거나 거짓 사용후기

1회 결제 또는 무료체험인 척하며 반복적 수수료를 청구하고, 소비자가 선택하지도 않은 상품·옵션을 자동으로 장바구니에 추가하기도 한다. 배송비·수수료 등 추가 비용을 구매완료 직전 단계에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

다크패턴(소비유도상술) 주요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크패턴(소비유도상술) 주요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메일 수신거부’ 버튼을 ‘유용한 정보를 받기 싫어요’로, ‘구독 취소’ 버튼은 ‘다양한 혜택을 포기하겠습니까’ 등으로 바꾸는 것도 한 예다. 거짓 사용후기·체험기를 올리거나, 의도적으로 광고임을 숨기는 ‘뒷광고’ 등도 다크패턴으로 분류된다.

OECD에 따르면 과거 1년간 전자상거래 구매 이력이 있는 소비자의 약 50%가 다크패턴의 피해를 경험했으며, 65세 이상 노년층(26%)보다는 온라인 구매에 적극적인 18~29세 청년층(61%)의 피해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데스크톱보다는 모바일 기기에서 다크패턴이 더욱 만연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온라인 구매가 많은 의류·신발·스포츠용품·식음료·여행 등에서 피해가 잦고,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속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금전적 피해 외에 사생활 위험, 심리적 부담 등의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게 OECD의 설명이다.

사실 이런 다크패턴은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수법이다. 하지만 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회사까지 다크패턴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면서 경각심이 높아졌다. 특히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다크패턴도 함께 늘고 있다. 1만1000여 개 쇼핑 사이트에서 5만3000여 개 제품을 살펴본 결과, 1254개 사이트에서 1818개 다크패턴 사례를 발견했다. OECD가 국제적 대응 수준을 높이고 있는 배경이다.

OECD는 “소비자의 행동편향을 악용해 잠재적으로 위해요소가 있는 구매 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웹·애플리케이션이 온라인상에서 확산 추세”라며 “다크패턴은 경쟁질서나 소비자 신뢰를 저해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금지규정 마련, 취약 소비자에 대한 모니터링, 소비자 교육 강화, 개별화한 다크패턴에 대한 감시 강화 등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 공정거래 당국도 이런 움직임에 발을 맞추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다크패턴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공정거래 당국과 협조체제를 구축해 선제적으로 피해 사례를 분석하고, 관련 정책의 홍보와 소비자 교육도 강화한다.

공정위, 온라인 플랫폼 책임 강화 추진

이는 앞서 소개한 A씨처럼 한국에서도 다크패턴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대면 온라인 소비가 일반화하면서, 다크패턴 피해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남동일 공정위 소비자정책국장은 “변화하는 디지털 시장에서 일부 업체의 기만적인 마케팅 행위를 차단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의 정보 공개는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크패턴(Dark Commercial Pattern)

영국의 독립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이 2011년 처음 소개했다. 온라인에서 사용자를 속이기 위해 디자인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12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다크패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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