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때 잡힌 국군 포로 수만인데...“무작정 종전선언하면 어쩌나”

중앙일보

입력 2021.12.02 17:45

업데이트 2021.12.02 17:47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전 북한에 억류된 한국 전쟁 국군포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국회와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서 나왔다.

국회 글로벌외교안보포럼ㆍ물망초ㆍ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종전선언의 한계와 전망'을 주제로 연 세미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국회 글로벌외교안보포럼ㆍ물망초ㆍ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종전선언의 한계와 전망'을 주제로 연 세미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종전선언 전 '전후 처리'부터 매듭지어야"

국회 글로벌외교안보포럼, 북한인권단체 물망초,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2일 오전 국회에서 ‘종전선언의 한계와 전망’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남ㆍ북ㆍ미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으며,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면 그 전에 북한의 비핵화를 담보하고 국군포로 등 전후 처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종전선언이 아무리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해도 일단"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나면, 북한을 향해 국군 포로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정당한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북한은 지금도 국군 포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종전선언까지 하고 나면 북한에 남아있는 생존자와 사망자 유해 송환, 포로 억류 당시 상황에 대한 진상 규명 등은 더 요원해진다는 지적이다.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역사적으로 포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전쟁 종료를 선포한 적은 없었다"며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한 고려조차 없이 종전선언만 추진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도 "6ㆍ25 전쟁 기간뿐 아니라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남북한 육상 및 해상 교전, 베트남 전쟁 등으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들이 있었다"며 "정부가 전면적인 자체 진상 조사를 통해 국군 포로와 관련한 정확한 사실 관계와 통계를 확인해 북한에 송환 요구를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에만 매몰된 채 이런 전후 처리 문제는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당의 대선 공약에도 국군 포로 문제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며 차기 정부에서라도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北에 국군포로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라"

국군 포로는 6ㆍ25 전쟁 기간 북한군과 중국군에 생포돼 포로가 됐으나 1953년 정전 협정이후 북한에 억류돼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국 국적의 참전 군인을 뜻한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지난 2014년 "6ㆍ25 전쟁 당시 8만여명의 한국군이 실종됐고 이 중 최소 5만명이 북한과 중국에 억류됐다"고 추정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박진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군 포로 문제를 언급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자국민이 전쟁 중 억류돼 처참히 인권이 유린당했는데 정부는 지금 북한에 국군 포로가 정확히 몇 명이나 생존해 있는지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03년 국방부 차원에서 북한에 잔류한 국군 포로 생존자를 약 500명으로 추산해 발표한 이후 더 이상 관련 통계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의 수를 최소 5만명에서 10만명 수준으로 추산하며, 현재 생존자는 150~200명 정도로 본다.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탈북한 국군 포로들은 지난해 7월 북한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들이 북한에서 47년간 불법으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김 위원장이 이들에게 위자료 21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 법원이 국군 포로 학대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물은 첫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국군포로 송환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 없이 미온적 대응만 이어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달 유엔 총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올해 북한인권결의안에는 유엔 총회 차원의 결의안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내 국군 포로에 대한 인권 침해 실태가 명시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결의안 공동 제안에 불참했다. 한국은 지난 2019년부터 3년 연속으로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정수한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장은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남아있던 국군 포로들과 가족들은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포로 송환 등이 이뤄지길 고대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자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다고 한다"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군 포로 송환 논의에 전혀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글로벌외교안보포럼ㆍ물망초ㆍ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종전선언의 한계와 전망'을 주제로 연 세미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국회 글로벌외교안보포럼ㆍ물망초ㆍ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종전선언의 한계와 전망'을 주제로 연 세미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北 비핵화 의지 없어...종전선언은 정권 실적용"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종전선언이 현 정전 체제에 영향을 줘선 안 되며 북한의 비핵화를 담보할 수 없는 종전선언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은 한ㆍ미 연합방위태세를 흔드는 종전선언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ㆍ미가 공동문안에 합의해 북한에 이를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ㆍ미 안보 태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국 북한 공사를 지낸 같은 당 태영호 의원도 "김정은 정권은 선대와 달리 중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고자 한다"며 "북한이 사실상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전제로 종전선언 관련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 남북 간 판문점 선언과 북ㆍ미 간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 비핵화를 전혀 촉진하지 못했는데 과연 종전선언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건 결국 정치적 고려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정권 재창출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1938년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 간 '뮌헨 협정' 이듬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지난해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 협정 후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비핵화가 보장되지 않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추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종전선언은 국익을 위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실적 쌓기 차원"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은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아니면 말고' 식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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