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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성희롱 증거 공개 거절한 인권위에 "초법적 기구냐" 공방

중앙일보

입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부인 강난희씨. 김상선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부인 강난희씨. 김상선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2차 가해’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의혹을 사실로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 제출 여부를 놓고서다. 박 전 시장의 유족 측은 인권위의 판단 근거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인권위는 “관련 자료가 공개될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거부하는 상황이다.

“‘박원순 성희롱 인정’ 근거 제출하라”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지난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 글을 대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지난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 글을 대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공방이 벌어지는 건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통해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종환)는 지난 30일 강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을 심리하면서 인권위를 상대로 “성희롱을 인정한 주요 정황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의 적법 여부가 문제 되는 상황에서 실체에 관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박 전 시장 유족 측은 “인권위가 피해자와 참고인 진술, 문자메시지 내용 등 결정에 참고한 관련 근거들을 모두 제출해야 한다”며 법원에 문서 제출명령 신청을 냈다.

유족 측이 요구한 자료는 지난 1월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의혹을 사실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참고한 증거들이다. 당시 인권위는 6개월간의 직권조사를 거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과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서울시 등 관계 기관에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를 의결했다.

인권위 거절에 “초법적 기구냐” 반발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그러나 유족 측의 문서 제출명령 신청에 대해 인권위는 “민감한 인권침해 사건이고 인권위에서 이런 사안을 공개한 유례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인권위는 “이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피해 내용이 공개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2차 피해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정문에 어떤 자료를 근거로 삼았는지 충분히 기재했다”고 덧붙였다.

유족을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는 이날 재판이 끝난 후 “인권위는 자신들이 법원보다 우월한 기관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며 “법원의 제출 명령은 내부 규정을 다 뛰어넘는다”며 재차 공개를 주장했다. 이날 권고 결정 취소 소송 변론에는 박 전 시장의 부인 강씨가 직접 출석하기도 했다. 인권위의 결정이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였다며 지난 4월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강씨는 재판에 앞서 “판사님들이 정확하게 판단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며 짧게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가 ‘2차 가해’를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법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는 기구가 ‘초법적 기구’다”며 “법치국가는 ‘초법적 기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 18일 심리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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