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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숭은 딱 질색…2030에 통한 솔직발칙 로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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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종서(오른쪽), 손석구 주연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데이트 앱으로 만난 남녀의 솔직한 연애담을 담아 2030세대 표심을 얻었다. [사진 CJ ENM]

전종서(오른쪽), 손석구 주연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데이트 앱으로 만난 남녀의 솔직한 연애담을 담아 2030세대 표심을 얻었다. [사진 CJ ENM]

여성 감독들의 솔직 발칙한 로맨스가 늦가을 극장가를 사로잡았다. 조은지(40)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 정가영(31) 감독의 ‘연애 빠진 로맨스’다. 기존 로맨스 공식을 비튼 제목, 톡톡 튀는 말맛과 코믹한 사연을 버무린 전개, 그러면서도 요즘 시대 인간관계를 생각하게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두 편 모두 독립 및 단편영화로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신인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 ‘우리들’ ‘벌새’ ‘메기’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개성 강한 여성 감독을 배출해온 독립영화계 흐름이 대중영화계 신인 발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데이트 앱 소재의 ‘연애 빠진 로맨스’는 최근 여성들의 술과 성, 사회생활을 ‘19금’ 수위로 담아 주목받은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과도 닮았다. 현실에 있지만 영화·드라마가 다루기 조심스러웠던 영역을 대놓고 내세웠다는 점에서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이혼·동성애 등 민감한 소재를 웃음으로 그려냈다. [사진 NEW]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이혼·동성애 등 민감한 소재를 웃음으로 그려냈다. [사진 NEW]

영화 ‘버닝’ ‘콜’로 급부상한 전종서, 넷플릭스 군대 드라마 ‘D.P.’로 주목받은 손석구가 주연을 맡아 만남 첫날 모텔로 향하는 청춘남녀의 ‘밀당’을 맛깔나게 그렸다. 함자영(전종서), 박우리(손석구) 등 주인공 이름부터 적나라하다. 영화에도 이름에 얽힌 농담 등 성적 대화가 탁구공처럼 오간다. 신분을 감출 수 있는 데이트 앱을 통한 만남의 고민과 갈등도 담았다. “15세(관람가)라고 하기엔 좀 야하다” 등 대사 수위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지만, “재밌게 봤다. 요즘 애들 이야기” “제법 생각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이상 메가박스 예매 앱 실관람평) 등 호평이 더 많다. 지난달 24일 개봉 이후 엿새 만에 23만 관객을 모았다.

각본·연출을 겸한 정가영 감독은 화상 인터뷰에서 “처음엔 섹스 파트너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데이트 앱으로 관계 갖는 사람이 많고 영화 소재로도 재밌을 것 같았다”면서 “현실엔 많은데 이렇게 직접 드러낸 작품이 많지 않은 듯해, 과감하게 도전했다”고 했다. “저도 관객일 때 내숭떨지 않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술집에서 친구들끼리 나누는 얘기처럼 부끄럽지만, 귀는 기울이고 싶은 그런 대사를 많이 쓰려고 했다”면서다.

정가영 감독

정가영 감독

이런 솔직함이 2030 관객들과 통한 것으로 보인다. ‘연애 빠진 로맨스’의 연령별 관객 비율은 20대가 CGV 예매앱(44%), 롯데시네마 예매앱(55%) 모두 압도적. 이어 30대(CGV 27%, 롯데 19%)가 높았다. 1990년생인 정 감독은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태어난 세대는 저희보다 더 가식 없고, 위선적인 것에 반감이 있더라. OTT에서 잘되는 콘텐트를 봐도 직관적으로 재밌는 작품에 수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정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감독상과 올해의 배우상(박종환)을 차지한 ‘밤치기’(2018) 등 독립영화에서 현실 연애의 민낯을 들춰왔다.

20년 차 배우 조은지의 장편 감독 데뷔작 ‘장르만 로맨스’는 개봉 이후 2주 만에 50만 관객을 모았다. 20대 관객이 가장 많이 봤다(CGV 35%, 롯데 47%). 개봉한 지난달 17일엔 마동석의 마블 액션 영화 ‘이터널스’를 제치고 흥행 1위에 올랐다.

조은지 감독

조은지 감독

동성애자 대학생과 유부남 교수, 이혼 부부와 자녀, 남고생과 30대 주부 등의 갈등 관계를 공감 가는 웃음으로 그려냈다. 조 감독은 김나들 작가의 각본을 토대로 각색에 참여해 자신의 경험담을 보탰다. 그는 “현실 상황의 코미디를 접목하면 관객들이 감정을 더 따라와 주지 않을까 했다”고 설명했다.

류승룡·오나라·김희원·이유영·성유빈·무진성 등 배우들의 편안한 호흡도 돋보인다. 류승룡은 “그동안 선 굵은 사극·장르물을 많이 해, 옆집 이웃 같은 인물 연기 때 어려웠는데 조은지 감독이 구체적으로, 생각지 못한 지점을 툭툭 잡아줬다”면서 “황제 케어를 받은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 영화는 제작사가 조 감독이 각본·연출해 만든 단편 ‘2박 3일’을 보고 러브콜을 보내면서 만들어졌다. ‘2박 3일’은 이별 통보를 받은 젊은 여성이 남자친구 집에 사흘을 머물며 그 가족들의 ‘웃픈’ 속사정을 목격하는 독특한 내용. 여러 인물의 미묘한 감정선을 엮어낸 솜씨는 ‘장르만 로맨스’에도 드러난다.

지난 수년간 늦가을 극장가엔 ‘미쓰백’(2018), ‘82년생 김지영’(2019),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등 여성 감독이나 주인공 영화가 두드러졌다. 영진위에 따르면, 특히 지난해 코로나로 대작 개봉이 밀리면서 규모가 작은 여성 영화의 비중이 최근 5년 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여성 주연 작품은 37.3%(2019)에서 42.1%로, 여성 감독 작품은 14.1%(2019)에서 21.5%로 급증했다. 영진위는 “한국 개봉작에서 여성 감독 비중이 20%를 넘은 건 한국 영화사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장르만 로맨스’ ‘연애 빠진 로맨스’는 각각 대형 투자·배급사 NEW와 CJ ENM이 시즌용으로 기획한 소소한 로맨틱 코미디다. 주류영화로 주목하긴 힘들다”면서 “여성 감독이 늘었지만, 자본이 그들에게 얼마나 주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순례 감독이 100억원대 제작비를 투자받은 황정민·현빈 주연 ‘교섭’ 등 향후 개봉작에 기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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