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하사 망명 빌미 7년간 불법억류/북한 후지산호 선원석방 시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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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네마루 방북답한 김일성선물
일­북한관계개선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후지산호 사건이 11일 해결을 보게됨으로써 평양­동경 관계의 초점은 국교정상화교섭을 위한 정부간 절충으로 옮겨지게 됐다.
제18후지산호 사건은 사건발생 당시부터 많은 의혹이 뒤따랐으나 특히 북한측이 이들 승무원 2명을 구속,이를 대일 교섭카드로 이용해옴으로써 일본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83년 11월 제18후지산호가 평양외항 남포항에 정박해 있던 중 북한인민군 민홍구하사가 자유세계망명을 희망해 이 배에 잠입,출항후 발견됐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일본선원들이 민하사의 밀항을 도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 민씨를 일 모지(문사) 해상보안부가 밀항혐의로 체포한 직후 후지산호는 다시 화물수송차 남포항에 입항했다. 이때 북한당국은 베니코선장등 5명을 스파이혐의로 억류했다가 3명은 석방시키고 2명을 계속 억류했던 것이다.
북한측은 베니코씨등 2명의 석방은 민씨의 반환이 전제조건이라고 계속 버텨 일­북한간에는 줄곧 이들의 석방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돼왔다.
일본외무성은 87년 11월 민씨를 국제법상의 정치망명으로 인정,가석방시킨 반면 북한측은 선장 등 2명에게 각각 노동교화형 15년을 언도했다.
이후 일­북한간의 교섭은 87년 1월 김만철씨일가 집단망명사건,같은해 11월 KAL기 폭파사건,지난해 가을 일본 국회에서 문제가 된 빠찐꼬 의혹사건등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7월 사회당대표단의 북한방문때 조선노동당과의 절충에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지난달 가네마루ㆍ다나베 양당대표단의 방문때 김일성주석이 직접 10월 석방을 약속,약 7년만에 해결을 보게 되었다.<동경=방인철특파원>
◎<후지산호 사건일지>
▲83.11.3=민항귀하사 남포에서 후지산호 잠입,다음날 일본 밀입국(후쿠오카항) ▲11.15=남포에 재입국한 후지산호선원 5명 스파이혐의로 체포 민과 교환 요구 ▲12.14=일 외무성 교환제의 거부 ▲84.2.7=억류선원 5명중 3명 석방 ▲85.4.8=북한,민과 일본선원 교환 재요구 ▲6.21=일 법무성,7월초 민의 가석방방침 결정 ▲10.5=일 외무성,북측과 북경에서 공식접촉결정 ▲11.2=민하사 가석방 ▲88.12.16=일 법무성,민에 특별체류(3년)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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