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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당해 축 늘어진 딸 방치”…아동학대 살해죄 양부 22년형

중앙일보

입력

'화성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의 양부 A씨가 지난 5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화성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의 양부 A씨가 지난 5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아이가 축 늘어졌는데도 방치했다.”
두 살 된 입양 자녀를 때려 숨지게 한 ‘화성 입양아 학대 사망사건’의 재판부가 형량을 선고하면서 내린 판단이다. 법원은 양부에게 징역 22년, 양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면서 살인의 고의를 인정했다. 올해 3월 신설된 아동학대 살해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지난 5일 인천 ‘3살 딸 방치 살해’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양부 징역 22년, 양모 징역 6년 선고 

수원지법 형사15부(조휴옥 부장판사)는 25일 아동학대살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부(36)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 및 10년간의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양모(35)에게도 징역 6년을 선고하고 80시간 이수 명령 및 5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양부는 지난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입양한 딸(2018년 8월생)을 나무로 된 등긁이와 구둣주걱, 손 등으로 여러 차례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 자주 울고, 고집을 부린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아이는 지난 5월 8일 양부 폭행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즉각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7시간가량 방치됐다.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아이는 두 달여 뒤인 지난 7월 11일 숨졌다.

검찰은 양부모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 중상해) 등 혐의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다. 하지만 딸 사망 이후 사인과 학대의 연관성을 검토해 양부에겐 아동학대 살해죄를, 양모에겐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아동학대 살해죄는 아동을 학대해 숨지게 한 자에게 사형·무기징역이나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양부에게 무기징역을, 양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법원 "돌봐야 할 자녀를 학대, 죄책 무겁다"

법원은 “고의가 인정된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양부가 생후 33개월에 불과한 피해 아동의 머리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경우 뇌 손상으로 이어져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인정된다”며 “사건 당일 폭행이 계획된 것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해 발생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폭행 후 피해 아동이 축 늘어지고 구토를 하는 등 이상 증상을 보이는데도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하지 않고 즉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자신의 행위로 피해 아동이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위험을 인식하고도 범행을 했고, 보호·양육의무자인데도 생명이 위태로운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양모에 대해서도 “사건 당일 피해 아동이 쓰러진 이후에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상 증상을 보이는 것을 알면서도 학대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뒤늦게 병원에 갔다”며 “직접 학대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행위로 사망에 이르렀으니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들 부부가 다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양모는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재판 내내 고개 숙인 양부모, 방청석에선 탄식

피고인석에 앞뒤로 앉은 부부는 한 번도 마주 보지 않았다. 녹색 수의를 입은 양부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검은 패딩 점퍼를 입은 양모는 고개를 숙인 채 울었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시민과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양부에게 무기징역이 아닌 징역 22년이 선고되자 탄식하기도 했다. 공혜정 대한아동방지협회 대표는 “국민적 공분에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법원이 부양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양모를 법정구속하지 않는 등 가해자에게 온정을 베풀고 있다.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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