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향형(E) 우대” MBTI가 취업스펙?…자아탐구에 빠진 MZ세대

중앙일보

입력

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MZ세대 사이에서 자아탐구 경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MBTI

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MZ세대 사이에서 자아탐구 경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MBTI

“저는 재기발랄한 활동가, ENFP예요. 당신은요?”

유행으로 그칠 것 같던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열풍이 MZ(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자아 탐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MBTI를 묻는 건 이름과 나이만큼이나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가 됐다. 채용 공고에서 선호하는 MBTI를 밝히는 기업까지 생겨나고 있다.

혈액형보다 구체적인 16가지 성격분류  

MZ세대는 MBTI 검사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사진 언스플래쉬

MZ세대는 MBTI 검사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사진 언스플래쉬

성격유형 검사인 MBTI는 실제로 심리학에서 활용되는 자기 보고식 검사 방법의 하나로,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다.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의 8가지 경향을 조합해 총 16가지 유형으로 성격을 분류한다.

MBTI 지지자들은 “MBTI는 과학”이라고 입을 모은다.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외향적’이라는 식의 혈액형 유형 분류에 대해 시큰둥하던 이들도 MBTI는 체계적이며,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본인의 MBTI와 관련된 특성과 밈(meme·인터넷에서 놀이처럼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을 찾아보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직장인 최모(32)씨는 “평소 INTP의 특성에 대한 글을 찾아보면서 공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다른 INTP들도 그런 걸 보면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이 든다”며 “평소 문제라고 여겼던 내 성격이 그저 16개 유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인정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난 스티브 잡스 유형  

스티브 잡스, 고든 램지, 마거릿 대처,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이 속한 ENTJ 유형. 사진 MBTI

스티브 잡스, 고든 램지, 마거릿 대처,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이 속한 ENTJ 유형. 사진 MBTI

자신과 같은 MBTI 유형의 유명인을 찾는 것도 재미다. ‘대담한 통솔자(ENTJ)’에 속하는 신모(37)씨는 “평소 직설적인 성격이라 냉정하고 거칠게 말한다는 핀잔을 듣는 편인데, 내 성격 유형에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 고든 램지(요리사), 마거릿 대처(전 영국 총리) 등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며 “한국 사회는 획일적인 성격을 요구하지만 MBTI를 통해 다양성을 인정받을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MBTI를 찾아보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키워드 검색량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MBTI를 키워드로 하는 PC·모바일 검색량은 올해 꾸준히 증가해 지난달 최대치인 93만건을 기록했다. 이달에는 약 100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연령별로는 20대가 40%로 가장 많고, 10대와 30대도 각각 23%, 22%를 차지했다.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1020세대는 이미 학교에서 MBTI를 경험해 친숙한 데다 자아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어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구직시장서 우대받는 ‘E(외향형)인재’ 

영화배우 디젤, 할리 베리, 앤 헤서웨이와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 등이 속한 ISFJ 유형. 사진 MBTI

영화배우 디젤, 할리 베리, 앤 헤서웨이와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 등이 속한 ISFJ 유형. 사진 MBTI

젊은 세대 사이에선 MBTI를 취업 스펙으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에는 우대사항에 ‘MBTI가 E로 시작하는 분’을 기재한 기업이 등장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일부 구직자들은 “성격이 외향적이라고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건 편견”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회장이 입사 지원자들에게 MBTI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직원 고용에 MBTI를 활용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MBTI가 구직자 평가 등 객관적 잣대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본인이 되고 싶은 성격과 실제 성격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검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MBTI 질문에 나오는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