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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아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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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아편전쟁 초기 영국군과 담판에 나선 것은 직예총독 기선이다. 당초 강경 토벌을 주장했던 그는 영국군의 화력을 목도한 뒤 입장을 바꿨다. 주요 항구 5곳을 개항하는 조약 체결을 추진했다.

보고를 받은 청나라 황제 도광제는 노발대발했다. 그는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고 과장해 조정을 압박했다. 이는 은혜를 배신하고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며 재산을 몰수하고 변방으로 귀양보냈다. 기선의 비참한 결말은 후임자에게 ‘가이드라인’이 됐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이후 누가 부임하든 똑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서양 오랑캐 토벌을 호언장담했다가 영국군에 패배하고, 조정에 승리했다고 허위 보고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강남의 항구도시 광주가 영국군에 완벽하게 포위됐던 1841년 5월, 북경은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거짓 보고를 받은 도광제는 흡족해했다. 허위 보고가 과장될수록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가혹한 대가로 돌아왔다. 광동성 일대를 초토화한 영국군은 계속 북상했고, 청나라는 난징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1년 전 기선이 요청했던 것보다 훨씬 불리한 내용이었다. 중국의 역사학자 이중톈은 “아편전쟁 기간의 거짓말은 청나라 조정을 마비시켰던 지독한 ‘아편’이었다.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정보는 선별 과정을 거친 왜곡된 것들이었다”고 비판했다.

임기 내내 부동산 문제를 자신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정책 실패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충분히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부동산 가격도 상당히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아편’은 청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